2009년 5월 29일 금요일

프랑스 혁명, 이제서야...

우리의 민주주의는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뭐 심각한 얘기, 어려운 얘기를 하자는게 아니라 그동안 대부분의 결과물들은 민초의 힘으로 시작되거나 완료된것이 없다는 뜻이다.

4.19 혁명은 결국 반쪽짜리로 끝나고 말고, 5.18항쟁 또한 그냥 항쟁으로 끝나고 만다.

대부분 실패로 남았다는 거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모두 정치인 등, 권력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프랑스...

참 국민을 어려워 하는 나라다.

정치권이나 정치세력에서는 국민의 한마디와 국민의 힘에 대해 무서워 한다.

단두대에 자신들의 대표, 나라의 수장의 목을 잘라버린 잔인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잘 못하면, 국민들의 심판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벌벌 떤다.

 

이제 우리나라도 그런 시기가 오고 있는듯 하다.

 

프랑스 혁명은...

구제도(앙시앵 레짐)의 모순에서 발생하였다. 구제도 하에서는 인구의 2% 정도밖에 안 되는 제1신분(추기경등의 로마 가톨릭 고위 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은 면세 등의 혜택을 누리면서, 주요 관직을 독점하였다. 인구의 약 98%를 차지하던 제3신분(평민)은 무거운 세금을 부담해야 했지만 제3신분이 정치참여를 할 수 있는 삼부회가 175년이나 소집되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전국민의 5~10%만을 위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많이 흡사하다.

 

빵이 없으면, 라면을 먹으면 되고, 쌀이 떨어지면, 밀가루반죽으로 먹으라고 했던 마리앙뜨와네트 왕비(실제로 이런얘기를 하지는 않았다.)가 아니더라도 이 정부는 그동안 어렵게? 살았던 상위계급에게 그동안 냈던 세금마저 돌려주며, 계급을 나누고 있었다.

정치가 아닌 경제논리라고 하면서 도덕성은 바닥인데다가... 실질적으로 왜 이렇게 어려운지를 모르는 시각이 너무나 흡사하다.

 

1700년대말,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나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많이 맞아 떨어진다.

21세기가 되어서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피를 뿌려야 우리네 민주주의가 제대로 설까.

개인적으로는 겁이 많이 난다.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도 그렇고, 그렇게 된다면, 그 이후의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될것이며, 우리가 처한 남북상황에 대해서도 걱정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나면, 동요하는 민심을 가두고, 방어하고,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내려와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봤으면 좋겠다.

분명 난 이정부와 우리네 국민들간의 오해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황석영 작가도 그랬다. 중도정치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보다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주위의 깝치는 보수라고 자처하는 수구꼴통들의 범위에서 벗어나서 우리네 삶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뿐 아니라,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고... 대화로 그동안의 쌓였던 '뭔가'를 풀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민과의 소통을 막는걸로만 일관한다면,

힘으로 누를수 있다고 믿는다면,

두들겨서 싹을 없애겠다면,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전부 국가를 전복시키기 위한 빨갱이라고 믿고 있다면,

국민의 힘으로 단두대에 서게 되는 최초의 대표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혁명이... 미국에도 아직 오지 않은 혁명이.. 일본에는 절대로 올 수 없는 혁명이..

대한민국 땅에 꽃을 피우게 될런지 모르겠다.

 

 

오늘까지는 참으려고 했으나, 지금 현재에도 삽질을 하고 있는 정부를 들여다 보니 답답해서 한마디 한다.

 

부디..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오늘 분향하고 왔습니다.

오늘 308국도 공예품성 8층의 한인상회에 마련된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많은 분들이 오셨더군요.

끝내고 나가는데도 많은 분들이 승강기를 기다리고 계셨더랬습니다.

 

 

 

 

그리고..국민장이 끝나는 29일까지는 자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의미심장해서 작가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무작정 퍼오긴 했습니다.

나중이라도 작가님께 메일한번 보내서 허락을 득한후에 안되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356998.html
독 신문 “노무현, 몰이사냥에 못견딘 것”

FAZ는 이날 논평에서 "노 전 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은 그의 임기 내내 `자격도 안 되는 인물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서... (이하생략)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61816085&code=940301
盧 전대통령 서거 전부터 檢 내부서도 “수사 이상하다”
포괄적 뇌물죄 입증할 뚜렷한 증거없이 압박...(이하 생략)

 

 

정말이지... 상중이라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고, 엄숙한 마음으로 가시는길 편하게 해드리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요.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재임중에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음만큼 실망이 컸다는 표현이 맞을겁니다.

그러나.

그 분이 내려가신 뒤에 얼마나 좋은 분인지를 알았지요.

가끔 매스컴을 타시면서 보여주신 그분의 미소와 털털함에 슬슬 노빠가 되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근데 결국...

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뒷통수를 치더군요.

도덕적인 문제.

아무리 레임덕이라도, 임기말의 발톱빠진 호랑이라도... 하면서도 내심 적은 액수의 금액에 대해 주위사람들에게 변명같이 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많이 보고 싶을겁니다.

 

제발 이 분의 죽음을 가지고 어처구니 없이 사용되어지는 경우가 없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특히 우리를 대표한다는 무뇌충들과 권력에 빌붙어 글다운 글 한번 쓰지 않고, 말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대형 찌라시 언론사들의 작태가 눈에 선합니다.

 

이제 아이와 함께 하려고 했던 봉하마을 투어는 어떻게 해야 할런지..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낮술이라도 해야 할지..

2009년 5월 21일 목요일

쥐가 고양이를 뽑는 이유(펌)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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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까닭 - 강수돌

어느 미국 독립영화 중에 ‘마우스콘신’이라는 5분짜리 영화가 있다. 마우스콘신이란 쥐들이 사는 마을이다.

이 쥐들도 인간처럼 4-5년마다 대통령을 뽑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는다.

한번은 흰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고 다음엔 검은 고양이를 뽑는다.

일단 뽑고 나면 쥐들은 고양이 앞에 혼비백산하여 이리 도망 다니고 저리 도망 다닌다.

여기서 물려 죽고 저기서 졸도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선거철만 되면 또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는다.

이번에는 얼룩 고양이다. 그러나 ‘혹시나’가 또다시 ‘역시나’로 끝난다.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린다.

마침내 어느 용감한 쥐가 분연히 일어난다. “여러분, 왜 우리가 어리석게 자꾸만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는가요?

이제는 우리 쥐들이 직접 나서서 대통령을 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고양이 대통령으로부터 더 이상 억압과 착취를 당하지 않을 것 아니오?”

이 말에 마우스콘신의 모든 쥐들이 “맞소, 맞아!”하며 모두들 두 팔을 번쩍 들고 소리치는 가운데 ‘쥐 죽은 듯이’ 영화는 끝난다.

장 자크 루소가 이미 약 250년 전에 통찰한 바, “모든 국민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지 투표가 끝나자마자 노예로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흥미로운 영화다.

이른바 ‘의회 민주주의’는 그 제도적 성격 자체가 국민에게 파워를 주는 것(empowerment)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파워를 빼내간다(powerless).

대선 공탁금이 5억 원이라는 것 자체만 보아도 이미 돈 없는 사람은 출마 자체도 꿈꾸지 말라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돈을 많이 쓰니 나중에 당선 되면 본전 이상을 찾느라 바쁠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앞의 영화에서 왜 쥐들이 반복해서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쥐들이 스스로 가진 파워(self-power)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파워를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자기 외부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원한다. 그러나 그 강력한 리더십은 역으로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가장 서글픈 것은 그들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면서도 그것이 억압이고 착취인 줄 모를 때다. 마치 선거가 민주주의를 가장 잘 실현하기라도 하는 듯 믿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왜 쥐들은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면서도 그것이 억압이고 착취인 줄 모르는가?

왜 그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을 괴롭힐 지도자를 뽑으면서도 마치 그것이 가장 민주적인 것처럼 믿는 걸까?

그것은 그들이 일정한 ‘사다리 질서’ 위에서 마치 노력만 하면 모두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약삭빠른’ 지도자들이 대중을 통치하는 비밀이다. ‘사다리 질서 위의 분할 지배’, 바로 이것이다.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 질서는 위의 좁은 문을 열기 위해 아래의 대중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게 만든다.

일단 위로 올라가면 저절로 엄청난 떡고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공이요 출세로 비친다.

모든 부모들이 자기 자식만큼은 자기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길 바라고 그래서 혼신을 다해 공부를 더 시키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떡고물이 후하다는 현실, 그러나 모두가 올라갈 수 없음에도 모두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믿는 환상, 바로 이것 때문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경쟁이 늘 치열하게 전개될 때 저 높은 곳의, 아니면 무대 뒤에 숨어 있는 지배자들은 모든 대중들이 치열하게 피, 땀, 눈물을 흘리며 경쟁적으로 일한 결과를 효율적으로 수확해갈 수 있다.

일부 성과 높은 훌륭한 자들에게만 많은 떡고물을 나눠 주면서 말이다. 바로 이것이 사다리 질서의 비밀이다.

그러나 쥐들이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이 모든 사태는 뒤바뀐다.

더 이상 외부의 강력한 리더십 없이 스스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소통하고 연대하는 순간 더 이상 고양이는 필요 없다.

바로 그 순간 세상에는 평화가 온다. 바로 이것이 민중의 평화다. 과연 우리 인간 세계에서 마우스콘신 영화의 결론과 같은 민중의 평화는 언제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