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6일 월요일

중국의 설, 춘절

중국에 5년 이상 있으면서 중국에서 춘절을 맞이한건 세번인가 된다.

이번까지 말이다.

그런데..

재작년과 작년에 설을 모두 한국에서 보내서 일까?

많이 달라진 중국의 춘절을 느낀다.

처음에 중국땅에서 춘절을 맞이한건 그냥 한번 궁금해서 였다. 게다가 한국에서 구정휴가를 묶어서 여행오는 친구가 있어서 그냥 있어보기로 했던것.

그때는 차도 없고, 지리도 잘 모를때여서 시내와 이촌에서 대부분 시간들을 할애했는데, 지금의 폭죽이나 화약정도는 저리가라~ 할 정도이다.

아마 100배는 더 많이 시끄럽고, 더 자주 터뜨렸던것 같다.

얼마나 많이 터뜨렸는지 소방차가 쉴새없이 오고갔으니 말이다.

크고 작은 화재가 폭죽때문에 일어난 것이 그 이유였다.

 

경제위기가 중국에도 분명히 남아 있고, 그 여파가 오랜동안 갈 예정이라지만, 더 많은 복과 돈을 위해 폭죽을 구매하는데 아끼지 않았던 그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걸까?

인민폐절상으로 외국으로 여행가거나 타지로 여행간 인원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이제 구시대적인 미신과 같은것이니 자제해야 겠다는 자정의 결과일까?

암튼, 정말 생각보다 조용한 어제 저녁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처음 중국에 온 사람들이야 놀랐겠지만, 23개월된 영찬이도 한두번인가 뒤척이던거 말고는 잘 잤으니 많이 조용해진게 아닌가 말이다.

어제 늦더라도 폭죽 터뜨리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보려고 내심 기대했었는데 여보님께서 허해주시지 않아서 아쉬웠다.

 

내일이면 한국에 들어갔다가 31일 새벽같이 다시 와야 한다.

이번 한국행은 혼자 가는것인만큼 뭔가 많이 담아와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춘절만큼이나 조용한 국내분위기에 들뜨지 말고 조신하게 행동하다 와야겠다.

늦었지만, 이곳에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확정 연설

지난 11월 8일에 있었던 대통령 당선확정 연설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교재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말에 한번 들여다 보려고 검색했는데 구구절절 참 좋은 내용이어서 늦은감이 있지만, 이곳에 소개해 본다.

 

 

If there is anyone out there who still doubts that America is a place where all things are possible, who still wonders if the dream of our founders is alive in our time, who still questions the power of our democracy, tonight is your answer.

 

만약 아직도 미국이 모든것이 가능한 나라라는데 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국의 건국자들의 꿈이 아직도 이 시대에 살아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민주주의의 힘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이 바로 당신의 의심에 대한 답입니다.

 

 

It’s the answer told by lines that stretched around schools and churches in numbers this nation has never seen, by people who waited three hours and four hours, many for the first time in their lives, because they believed that this time must be different, that their voices could be that difference.


이것은 미국 전역내에 있는 학교 그리고 교회 밖에 길게 늘어선 줄, 우리가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그 많은 숫자들의 사람들, 그들은 투표를 하기 위해 3시간 4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중 많은 사람들은 이 투표가 그들 인생에 있어서 첫 투표였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모인것은  이번 만큼은 달라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이번만큼은 바꿀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It’s the answer spoken by young and old, rich and poor, Democrat and Republican, black, white, Hispanic, Asian, Native American, gay, straight, disabled and not disabled. Americans who sent a message to the world that we have never been just a collection of individuals or a collection of red states and blue states.

 

이 답은 젊은, 나이든, 부자인, 가난한, 민주당의, 공화당의, 흑인의, 백인의, 히스패닉의, 아시아인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동성애자의, 양성애자의, 장애인의, 그리고 비장애인의 목소리에서 나왔습니다. 미국은 이 세계에 메세지를 하나 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은 절대로 개개인의 합이 만든 혹은 붉은 주나 파란 주의 합으로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라는것을 말입니다.

 

 

We are, and always will be,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미합중국입니다.

 

 

It’s the answer that led those who’ve been told for so long by so many to be cynical and fearful and doubtful about what we can achieve to put their hands on the arc of history and bend it once more toward the hope of a better day.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에 대하여 냉소적이고 두려워하며 의심을 가졌던 사람들에 의하여 오랜 동안 세뇌되어 왔던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궤도에 손을 대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도록 만든 대답입니다.

 

 

It’s been a long time coming, but tonight, because of what we did on this date in this election at this defining moment change has come to America.

 

여기까지 정말 긴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밤, 우리가 오늘 이 선거날의 투표 결과가 나온 바로 이 순간 미국에는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A little bit earlier this evening, I received an extraordinarily gracious call from Senator McCain.

 

오늘 밤 저는 매케인 후보로 부터 아주 특별한 축하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Senator McCain fought long and hard in this campaign. And he’s fought even longer and harder for the country that he loves. He has endured sacrifices for America that most of us cannot begin to imagine. We are better off for the service rendered by this brave and selfless leader.

 

매케인 후보는 정말 오랜시간동안 힘들게 이 선거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보다 더욱 오래 그리고 더욱 열심히 자기가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우리 대부분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미국을 위해 희생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용감하고 이타적인 지도자들의 봉사 덕분에 더 잘 살고 있습니다.

 

 

I congratulate him; I congratulate Governor Palin for all that they’ve achieved. And I look forward to working with them to renew this nation’s promise in the months ahead.

 

나는 그를 축하합니다. 그리고 Palin 주지사도 축하드립니다. 그들이 이루었던것 모든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미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재건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할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I want to thank my partner in this journey, a man who campaigned from his heart, and spoke for the men and women he grew up with on the streets of Scranton ... and rode with on the train home to Delaware, the vice president-elect of the United States, Joe Biden.

 

저는 이 긴 여정동안 함께 해왔던 나의 파트너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 캠페인을 그의 가슴속에서, 그리고 그가 길거리에 이야기했던 남성과 여성들, 그가 Scranton 에서 함께 자라왔던 사람들 그리고 그의 집이 있는 Delaware행 열차에서 함께 탔던 사람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바로 이번 미국 부통령 Joe Biden입니다.

 

 

And I would not be standing here tonight without the unyielding support of my best friend for the last 16 years ... the rock of our family, the love of my life, the nation’s next first lady ... Michelle Obama.

 

그리고 저는 오늘 이사람의 끝없는 지원이 없었으면 이 자리에 서있지 못했을겁니다. 그녀는 지난 16년 동안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우리집의 기둥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자, 이 나라의 다음 영부인이 될 Michelle Obama입니다.

 

 

Sasha and Malia ... I love you both more than you can imagine. And you have earned the new puppy that’s coming with us ...to the new White House.

 

그리고 Sasha와 Malia 난 너희들이 상상할수 없을 만큼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그리고 너희에겐 새 강아지가 생길거야 바로 우리 백안관에 같이 들어오게 될 강아지란다.

 

 

And while she’s no longer with us, I know my grandmother’s watching, along with the family that made me who I am. I miss them tonight. I know that my debt to them is beyond measure.

 

그리고 지금 그녀는 저와 함께 할수없지만, 저는 저의 할머님께서 저를 보고 계시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나의 가족들과 함께  말이죠. 저는 오늘 그들이 그립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진 빚은 감히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To my sister Maya, my sister Alma, all my other brothers and sisters, thank you so much for all the support that you’ve given me. I am grateful to them.

 

내 sister (누나인지 동생인지..) Maya와 Alma 그리고 나의 모든 brothers and sisters, 당신들의 응원에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 단순하게 누이라고 해석하면 좋겠다. 굳이 따질필요야.. 가족사를 미리 알아두면 좋겠다.)

 

And to my campaign manager, David Plouffe ... the unsung hero of this campaign, who built the best — the best political campaign, I think, in the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그리고 나의 캠페인 매니저, 이 캠페인의 찬송되지 않은 영웅 David Plouffe. 그는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최고의 캠페인을 만들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To my chief strategist David Axelrod ... who’s been a partner with me every step of the way.

 

나의 한걸음 한걸음마다 함께해준 우리 캠프의 핵심 전략가 David Axelrod.

(* 이부분은 David Axelrod가 먼저 나오는게 더 나은 번역인듯 하다.)

 

 

To the best campaign team ever assembled in the history of politics ... you made this happen, and I am forever grateful for what you’ve sacrificed to get it done.

 

정치 역사상 모인 최고의 켐페인 팀. 당신들이 이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를 이루기 위해 당신들이 감수했던 희생에 영원히 감사합니다.

 

 

But above all, I will never forget who this victory truly belongs to. It belongs to you. It belongs to you.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이 승리가 누구의 것인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이 승리는 당신들의 것입니다. 이 승리는 진정 당신들의 것입니다.

 

 

I was never the likeliest candidate for this office. We didn’t start with much money or many endorsements. Our campaign was not hatched in the halls of Washington. It began in the backyards of Des Moines and the living rooms of Concord and the front porches of Charleston. It was built by working men and women who dug into what little savings they had to give $5 and $10 and $20 to the cause.

 

저는 이 당에 후보자가 될만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돈도, 지지자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켐페인은 워싱톤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켐페인은 Des Moines의 뒷뜰에서, Concord에 거실에서, 그리고 Charelston의 현관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켐페인은 일하는 수많은 남성과 여성들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잔고속에서도 5불, 10불, 20불을 기부하며 이 켐페인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It grew strength from the young people who rejected the myth of their generation’s apathy ... who left their homes and their families for jobs that offered little pay and less sleep.

 

이 켐페인의 힘은 자신들의 세대가 가진 무관심이라는 미신을 거절한 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주 적은 페이와 잠잘시간도 넉넉하지 않을정도로 긴 근무시간에 일을 하기위해 집과 가족을 떠나온 젊은 사람들입니다. 이 켐페인은 그들에게서 부터  시작됐습니다.

 

 

It grew strength from the not-so-young people who braved the bitter cold and scorching heat to knock on doors of perfect strangers, and from the millions of Americans who volunteered and organized and proved that more than two centuries later a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has not perished from the Earth.

 

이 켐페인의 힘은 친절하지 않은 완전한 남인 사람집에 문을 용기있게 두드려가며 일했던 그다지 젊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봉사했던 수백만의 미국인들에 의해
2세기가 지난 지금, 사람에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다는 이상이 이 세상에서 죽지 않았다는것을 증명했습니다.

 


[출처] [펌] 오바마 연설 전문입니다|작성자 김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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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치고 그다지 놀랍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니까 역사적인 연설이라든가, 문구가 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연설가인 스티브잡스만큼 달변가라고 하기에는 딱딱해보입니다. 그래도 고급스러운 표현과 진심어린 내용이 눈에 보여서 좋은 연설이라고 하나 봅니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지적을 하다가 말았습니다. 처음 번역한 분이 오역만 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두어도 나쁘지 않을것 같더군요.

뭐 제가 그다지 지적할 만큼 잘나지도 않았습니다만..ㅋㅋ

 

한번 소리내서 읽어볼만 합니다. 새해 아침에 오바마로 포스팅을 열어봅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기축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 1월 23일 금요일

새해 소망 한가지.

영찬이, 나와 아내, 그리고 할머니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영찬이의 재롱이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고, 똑똑해진다.

붙이는 판에 여러가지를 붙여놓고 이것 저것 주문을 하면 영찬이가 손가락으로 짚거나 카드를 떼어 오는 훈련(?)을 시키곤 하는데 제법이다.

뽀로로 멤버들은 거의 90%의 확률이다.

에디, 패티, 해리 등등 뽀로로 외에도 잘도 짚어낸다.

지금 보는 사진에서는 영찬이가 생가지를 들고 있다.

장난감이나 다른것이 아닌 채소와 함께 하는 교육~ ㅋ

 

옆의 할머니가 뭔가를 지시하고 있는데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은가 보다.

 

카메라만 보면 달려드는 통에 사진찍기가 쉽지 않다. 그날도 카메라를 발견하자 마자 뛰어왔다.

 

가식? 적인 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영찬. 불만인가보다.

 

사진을 의식할 줄 아는건지 표정이 언제나 살아있다.

 

엄마는 똑똑한 영찬이가 대견한지 연신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엄마는 야근때문에 늦은 저녁식사중이었는데 밥그릇을 들고 있으니 빈티~난다.ㅋㅋ

 

 

그냥 이대로 살면 되는데 누군가 큰 힘으로 쥐꼬리만한 이사비용을 주며 나가라고 한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30년이나 고생해서 겨우 집 하나 장만 했는데 재개발인지 뭔지의 경제발전 논리에 밀려 집을 잃고, 가족이 해체된다면 어떤 남자가, 가장이 가만히 있을까?

희생을 한다고 해도 국가를 위해서라면 모두가 이해되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IMF때에는 애기 돌선물로 받은 소중한 금반지들을 모두 모아 돈 한푼 받지 않고 국가에 낸 결과가 내 살던 곳에서 쫒겨나는 일이라면 난 국가와 정치인들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폭력적인 시위만을 부각시키는 소수의 사람들과 매스컴들은 근본과 결과를 가지고 분명히 짚어가야 할것입니다.

원인이 있었으니 결과가 있다는 말로 모두 덮어버리려 하는 힘이 있는 자들의 작태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이라는 것이.

 

그래.

정치논리, 경제적 원칙, 상대적 폭력 모두 배재합시다.

사람 죽은건, 한 가족의 가장이 죽은건, 열심히 일해서 국가의 기반이 되는 일꾼이 죽은건...

어떻게 해명, 설명, 해결해 주렵니까?

 

국가의 기본은 가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내 가족이 이 엄동설한에 내쫒기는것이 억울하여, 여러가지로 애써봤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느끼며 할것이라고는 매스컴에 알리는 시위밖에 없었다면, 가지지 못한자들의 좌절이 이미 하나의 삶으로 고정된 것이라면 모를까,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야만 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전쟁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투의 승리가 목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의 얘기를 듣지 못하는 정치인, 공권력이라면 뭐하러 민주주의라 합니까?

차리리 독재선언을 하시는 것이 국민들이 판단하기에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난 아이가 이렇게 예쁘게 자라나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며, 행복한 가정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무너지는 가정을 보고 싶지 않고, 한겨울에 길거리로 내쫒기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발 대한민국 우리나라가 살고 싶은 곳으로 남아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듣고 싶은 소시민, 그리고 아빠이며, 남편입니다.

등지고 싶은 고국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새해 소망입니다.

2009년 1월 21일 수요일

회사, 그리고 참사

어제..

저녁즈음에 함께 술이나 한잔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동생 창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에 식사 하면서 얘기나 하자고..

그래서 무슨일 있냐고 했더니 용산사태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직접 인터넷으로 알아보라고 해서 부랴부랴 찾아봤더니 경악할만한 사건이 떡하니 있는게 아닌가.

그다지 즐겁지 않은 세상에 대한 단절을 여러모로 노력중에 있는지라 인터넷 기사 등에 대한 내용을 일부러 애써 피하고 있었기에 알기 힘들었던 내용들.

용산 한복판에서 전쟁이 났고, 그 결과물들이 너무 처참해서 차마 입밖으로 내기 힘든..

 

단순하게 용산을 정치하는 대표자와 서울을 대표해서 정치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던 요구가 돌팔매와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서 실탄을 가진, 실제로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공권력이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게 만들어 참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분명 용서받기 힘든일이다.

 

언제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 곳의 대표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민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장도 아니고, 그들을 자기 수하로 생각해서도 안된다.

게다가 (방어적)폭력에 대한 (공격적)폭력을 행사할 권력이 오용, 남용 되어서도 안된다.

 

가난한 사람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소위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들.

불법이지만, 약자의 편에 있던 사람들.

참사.. 결국 죽음을 결정할 권리는 사람에게 없음을 분명 알아야 하며, 돌팔매질과 화염병투척이 사형선고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단순히 사람 몇명이 죽은게 아니라 그 자체가 문제이며, 문제인식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기사내용이나 글들은 그저 어쩔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렇게 되었다는게 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진압을 하려다 보니 어쩔수 없지 않느냐? 이다.

이건...

죽음 자체를 게임하듯이 즐기는 이스라엘 군대와 정부의 작태와 다를바 없다.

이스라엘은 자기 민족이 아니라서 그럴수도 있다는 변명이지만, 같은 민족을 처참하게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 어떠한 변명도 통할 수 없어야 하고, 변명을 늘어놓아서도 안된다.

일본식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용서를 빌어야만 하는 사무라이형식이라도 빌려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같이 울며, 슬퍼해야 할 것이다.

지도자, Leader는 아무나 되는것도 아니고, 시켜주지도 않는다.

스스로 지도자적인 생각과 마음가짐, 행동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 사장이 몇 가지의 소소한 일로 아침부터 일장 연설을 하고 갔다.

폐수처리, 분뇨처리 하는 인부에게 영수증을 청구해서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는 *부장의 입김에 흔들리신것 같다.

분명 폐수처리는 영수증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환경문제에 대해 준비를 할 수 없으니 꼬박꼬박 모아 두어야 한다는 대일 *사장님의 지시사항은 두번째라고 해도, 회계처리하면서 회사돈을 지급하는 책임자가 영수증없이 어떻게 돈을 지출한다는 말인가?

내가 마구 써버리고 영수증 처리 하지 않아도 회사에서는 돈이 나온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거다.

그저 난 인부의 입장을 배려하여, 일당에 대해 이름 석자, 폐수처리했다는 내용 써달라고 했던게 문제라면 그 인부와 관련된 회사에 책임을 물어야지, 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경영 리더쉽을 가진 분이지만,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꺼낼때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감동에 약하고 언제나 감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던 이순재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많은게 현실 정치, 현실 생활이다.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치나 경영이나 모두 좌표 없는 항해가 될것이며, 수많은 비행사가 떠들어대는 목적없는 비행이 될것이다.

 

오늘 아침은 이래저래 어제보다 힘든 시간이 되어버렸다.

회사.. 나에게 무엇인가 물어보는 시간, 시간들.

2009년 1월 16일 금요일

2005년 11월.

 

2005년 11월.

로마.

이 사진은 그냥 무턱대고 들이대던 공간에서 우연치 않게 잡힌 사진.

사진 정리를 하다가 발견하고 올려본다.

뭔가 애잔하다.

이별이거나 오랜만에 만났거나..

 

아름답다.

격정적이지 않아서 좋고, 둘의 관계가 서로 신중하고 예의를 가지고 있는것 같아 더욱 맘에 든다. 젊은 남녀의 포옹은 참 아름답다.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09년 1월 13일 화요일

동방명주 세번째 - 상하이역사박물관2

이 게시물을 마지막으로 이번 1일부터 3일까지 상하이 여행에 관련된 글은 마무리가 된다.

인터넷 속도덕분에 정말 더디게 진행된 글들. 그리고 사진들.

여기서는 여섯장이 올라간다.

 

서당인지 주장인지 하는 곳과 유사한 물의 도시의 사진앞에서 서 계신 정권사님.

꼭 실제 그곳에 계신듯 하고..

 

아편굴.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남자와 발안마를 해주고 있는 미모의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900년대 초의 상하이의 거리 모습.

약한 조명으로만 되어 있지만, 좋은 렌즈는 플래쉬 없이 잘 잡아내고 있다.

 

그 당시 신문팔이 소년.

이 소년은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미 고인이 되어버렸을까?

 

 

 

상하이의 옛 모습. 그 골목.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곳을 사진으로 담다.

이렇게 시간을 담을 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

 

아이와 할머니가 여행의 변수가 될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시작한 여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이번 상해 여행.

그래도 소소한 행복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시간들. 영찬이와 자영씨, 정권사님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를..

 

 

동방명주 두번째 - 상하이역사박물관1

원래 사진을 5장밖에 올릴수가 없는건지, 중국의 인터넷이 문제인지..

암튼, 계속 나눠서 올릴 수 밖에..

예전엔 된것 같은데 갑자기 취해진 조치일까??

동방명주 1층에 위치한 상하이 역사박물관 들어갑니다.

 

밀랍으로 만들어진 사람모형의 인형.

정말 실제로 보면 예쁘다.. 헉..

실제 건물들을 만들고, 그 안에 여러가지의 상황을 연출해 놓은 역사박물관.

 

예전에 사용한것으로 보이는 전화기를 직접 들어보는 정권사님.

실제로 음성이 나오고, 여러가지의 상황을 들어볼 수도 있다.

 

상하이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았다. 상하이의 예전 모습을 골목골목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

 

사람들이 많이 모여 뭔가를 하는것 같다. 대부분의 모형이 밀랍으로 만들어 놓은것과는 달리 종이(나무)재질로 세워 놓기만 한 장소.

이걸 만들때 돈이 부족했나? ㅋㅋ

 

 

뒷배경을 상하이 옛모습으로 놓고 찍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장소.

정권사님이 예전 상하이에 계시는걸 볼 수 있다.

이곳까지 오면 곧 나가는 장소가 나타난다.

 

2009년 1월 10일 토요일

동방명주 첫번째.

2009년 1월 3일.

상해 여행 마지막날.

어머니와 나만 푸둥의 동방명주에 올랐다.

동방명주는 구역이 세 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최고높이 350m의 구역, 중간 구역의 높이, 그리고 90m의 구역.

150위안이면 모든 곳을 관람할 수 있고, 1층에 위치한 상해발전전시장 또한 이용할 수 있다.

동방명주의 일부.

 

옆으로 보이는 세계 두번째 높이의 금융센터.

최근까지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던 진마오따샤도 보인다.

 

2009년 1월 8일 목요일

2009년 1월 7일 수요일

상해 운봉서커스 이모저모 - 2

상해 운봉 서커스 이모저모 두번째 이야기이자 끝.

동영상 줌이 안되는 것 외에는 최고의 똑딱이 디카인 파나소닉 FX.

맨 뒷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영찬이 때문에 서커스에 함께 하지 못한 자영에게 보여준다고 팔 떨어질뻔 하는걸? 감내하고 찍은 동영상들.

텍스트큐브가 별로인게 이 동영상 업로드 부분인데.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걱정이다.

유투브밖에는 없는건가?

 

 

 

 

 

 

 

 

 

 

 

 

 

 

 

서커스의 하이라이트.. 오토바이쇼!

서커스는 쇼처럼 꾸며져 있었다. 음악과 조명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내용 또한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런 쇼문화, 관람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중국 답게 질서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쇼가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어 제끼질 않나, 쇼 중간중간에 입장하면서 떠들지 않나, 쇼를 분석하는 해설가와 지방 아나운서들은 얼마나 많은지..

이런것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면 관리 및 운영 부분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도 이런 지속적인 쇼문화가 있다면, 운봉보다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문화를 부탁할 뿐이고.. 현재는 난타정도가 서울 관광코스로 개발되어 있긴 하다는데 문화도시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2009년 1월 5일 월요일

상해 운봉 서커스 이모저모 - 1

1월 1일.

저녁 6시 30분에 민박집을 출발해서 운봉서커스를 관람하기 위해 이미 예약한 렌트카에 올랐다.

예약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만 들어서 오늘 안되면 어쩔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4시가 넘어서야 겨우 예약이 되었다며 연락이 온다. 그래서 하루종일 피곤한 자영이와 영찬이를 제외한 인원만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두명만 보겠다고 했더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세 장의 표가 예약되었다는 것이다.

흠...

마시청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예약이 엉뚱하게 운봉으로 되지 않나, 4시가 넘어서야 예약이 되었는데 두 명만 가겠다니 세 명예약을 했다는 것이다. 한명의 표는 환불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며 기사까지 함께 딸려보냈는데 결국 환불이 안되어 두명이서 세명가격을 내고 가장 뒷자리에서 멀~리 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시작하면서.

상해의 모습을 배경으로 화려한 등장이 계속되고..

 

 

중국어, 영어로 유창하게 극중간에서 어나운서를 하던 사회자.

 

사람의 몸이라고 할 수 없을만한 유연함을 보여준 곡예사.

 

안전을 위해 무희의 몸에는 줄이 묶인다.

 

온몸으로, 아니 손 하나로 지탱하며 백조를 표현하고 있는 곡예사.

 

맨 마지막은 오토바이 쇼로 끝나는데 장관이다.

모두들 나와서 인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