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0일 목요일

우리 회사 제품.

우리 회사 제품은 한국인 관리자가 투자와 관리를 하고, 한국인 부품상에게 부품을 구매해서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메이드 인 차이나입니다. Made in China.

이 부분에 있어서 원래 본지방 사람들, 중국인들과 가격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월급을 최소한 한달에 1백만원, 그러니까 인민폐 6천위안은 가져가야 생활이 됩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한달에 2~3천위안만 있어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한끼 식사를 3~5위안으로 그냥 때우기만 하는 그네들과 먹거리 만큼은 아끼지 않는 우리네 정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금액의 최소 서너배 이상 음식값이 나오죠.
게다가 생활 양식도 너무 다르죠.
전기세 내는게 아까워서 냉장고도 사용하지 않고, 밖의 베란다처럼 만들어놓은 샷시창틀에 묶어 놓습니다. 물론, 더워지면 냉장고를 이용하죠.
그리고 등을 켜는것도 아까워서 가로등밑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피곤하면 들어가 잡니다.
우리네 처럼 에어컨 켜놓고, 텔레비젼 보면서 핸드폰 충전하면서 방 한구석에는 컴퓨터도 켜져 있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비교해도 원가분석표의 이윤이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회사와는 다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바이어들이 한국인 회사를 찾는 이유는 '약속'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것은 다반사고, 불량률도 어마어마 합니다.
컨테이너 하나에 반정도가 불량이었다는 일화는 이쪽통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불량처리나 클레임도 잘 안된다는게 더 큰 문제죠.

가격이 저렴해서 중국회사로 옮겼던 바이어들이 중국회사와 몇 번의 오더끝에 질려서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암튼, 돌아온 바이어는 중국회사의 단가를 맞춰달라고 하죠. 중국회사는 되는데 왜 너희들은 안되는건데? 라고 말이죠.
결국 자재를 저렴한 것으로 사용하는 합의점을 찾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하소연이 되어버린것 같아 이상하네요.
그래도 간단하게나마 해야 될 얘기 같아서 서두에 꺼내봤습니다.

아래는 Stretch Bracelets 종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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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이캐스팅으로 주조해서 도금하고 마무리 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미국의 바이어는 개당 9달러에서 10달러정도 받더군요.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이 제품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ㅋㅋ

수많은 우리 회사제품중 하나입니다.
모두 손수 수공으로 만드는 '핸드메이드'입니다.
그러나?
결국 Made in China죠.
다음번엔 유명브랜드 제품을 하나 소개해 볼까요?

2008년 7월 8일 화요일

어른이 필요한 사회

초연하다 [형용사]
1 『…에』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오는 초연하다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초연히 [부사]
1 ⇒초연하다.


어릴적에 노래를 한참 배울때 비목이라는 가곡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그쪽으로 전공하셨던 분이라 어릴때부터 클래식과 가곡에 젖어 있었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때 비목의 가사중에 초연이 쓸고간 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걸 전 초연하다의 초연과 硝煙의 초연을 구별하지 못했었습니다.

화약의 연기라는 초연(硝煙)은 6.25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서글픈 가곡입니다.

부르다 보면 목이 메이는 그런 감정을 지울 수 없는 곡이지요.


며칠전 그 가곡의 가사를 들여다 보면서 硝煙의 초연과 글의 첫머리를 만든, 부사 초연히와 어감도 느낌고, 감정적인 부분도 비슷하다는걸 생각해봅니다.


제가 날라리 학생일때 부르던 민중가요가 있습니다. '애국의 길'이라는 제목일겁니다.

뭐 저야 그냥 제목도 모르고 따라만 부르다가 입에 익은 그런 딴따라 학생이라 학생운동이 뭔지, 민족을 위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른채 의욕과 열정만으로 길거리를 누빌때가 있었더랬습니다.

그게 나의 의무이고, 내가 할 일이고, 나 아니면 안된다고 믿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하는 팔뚝질과 함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정말 믿었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뭐 그닥 달라진게 없어보이긴 하지만, 지금의 순수한 비폭력 촛불집회를 만든 초석이라고 믿습니다.

냄비근성의 한국민족은 일관성도 없고, 팔팔 끓을 그때뿐이다 라는 일본잔재의 말투를 싫어하면서도 장기전이 되면 배가 산으로 들로 올라가는 우리네 시각이 맘에 들지만은 않습니다.


암튼, 그 민중가요의 리듬은 조금 빠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즐겨부르던 민가는 아닙니다.

가사가 조금 거칠거든요.


1. 식민지 조국의 품 안에 태어나

   이땅에 발딛고 하루를 살아도
   민족을 위해 이목숨 할일 있다면

   미국놈 몰아내는 그것이어라
   아 위대한 해방의 길에 이름없이 쓰러져간 전사를 따라
   나로부터 일어나 투쟁하리라 반미 구국투쟁 만세

2. 찢겨진 내조국의 아픔을 딛고

   이제는 소리높여 노래부르자
  
통일은 우리의 소원일 수만은 없다

   오로지 통일만이 살길이어라
   이몸 갈갈이 찢겨짐으로 갈라진 내 조국 하나 된다면
   자랑스럽게 나아가 부서지리라 조국 통일 투쟁 만세

3. 우리의 후손들이 태어난 후에

   전설처럼 우리를 이야기하리라
   그때는 찢겨 피묻은 깃발이 남아

   해방의 강산위에 나부끼리라
   아 오늘도 우리는 간다 선배들의 핏자욱 서린 이길을
   노래부르며 서로를 일으키면서 애국의 한길을 간다


생각이 안나서 네이버 검색해보니 나오더군요. 그냥 퍼왔습니다.

앗! 이것때문에 운영자의 자질 논란이나 빨갱이라는 둥, 정치색이 어떻다 라는 편견은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민가의 가사보다는 리듬과 음정이 더 중요합니다.

어릴때부터 받아온 학습내용에는 가사보다는 음정과 리듬, 박자가 중요했다고 서두에서 말씀드렸으니 생략합니다.

이 가요를 느리게 부르면 얼마나 구성진지 모릅니다.

왈칵 슬픔의 눈물이 앞을 가리지요.


차라리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이라는 민중가요가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어둠 산천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 될 수 있다면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북소리처럼 울려날 수 있다면
침묵 산천 솟구쳐 오를 큰 함성 하나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

하늘 첫마을부터 땅끝마을까지
무너진 집터에서 저 공장 뜰까지
아 - 사람의 노래 평화의 노래
(아 -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큰 강물로 흐를 그날 그날엔
(큰 눈물로 흐를 그날 그날엔)

이름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움추린 어깨들 다 펴겠네
닫힌 가슴들 다 열리고
쓰러진 이들 다 일어나 아침을 맞겠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모두 하나될 그날이 오면
얼싸안고 춤을 추겠네 한판 대동의 춤을 추겠네
(한판 대동의 춤을 추겠네-)

하늘 첫마을부터 땅 끝마을까지
녹슨 철책선 너머 핵지뢰밭까지
아아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큰 눈물로 흐를 그날, 그날엔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움추린 어깨들 다 펴겠네
닫힌 가슴들 다 열리고
쓰러진 이들 다 일어나 아침을 맞겠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모두 하나될 그날이 오면
얼싸안고 춤을 추겠네
한판 대동의 춤을 추겠네

 

하도 생각이 안나서 네이버 검색해가며 글쓰고 있습니다.

헛헛

웃깁니다.

이제 기억속에서도 가물가물한 얘기를 왜 꺼내고 있는지...


조금만 더 지나면 전 팔뚝질을 하는 청년들의 생각에 대해 미안 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기성세대가 됩니다.

기성세대라는것이 뭐 정해진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책임지지 못한 세상, 사회를 이젠 그렇게 만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나이가 되는것이지요.


나이가 먹어가면서 책임지지도 않을거면서, 답도 내려주지 않을거면서, 문제제기만 하는 기성세대가 미워집니다.

의무를 가지고 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던 청년시절이 없었다면, 제발 지금이라도 입다물고 뒷방 늙은이 신세로 닥치고 앉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라도 입이 근질거리면, 내가 못바꿔서 미안혀~

이 세상 좀 더 살기 좋게 바꿔보려는 노력조차 안해서 미안하당께~

이제라도 아이들 미안하지 않게 조심할랑게~

말 한마디 하더라도 미안해 죽겠다는 심정으로 해부께~

라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드립니다.


그래요. 저 또한 얼마 안있어 그렇게 될 기성세대가 되기에 지금 막바지 동앗줄을 잡고 gR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폭력정치에 맞서서 팔뚝질 했는데 이렇게 밖에 안 바뀌어서 미안하다는 얘기 조차 부끄럽습니다.

아니 이러면서 스스로와 여러분들께 자랑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난 그래도 이정도는 했다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그리고 영화 미션에서 나왔던 대사.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 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죽어서 세상을 바꿔야 했을까 하는 어릴적 고민을 다시금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열정이 남아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책임져야 할 아이와 아내가 있기도 하지만, 이 세상은 절 팔뚝질의 청년으로 돌려놓는것이 아니라 그들을 응원해 주거나 너무 심하면 꾸짖고, 막아서고, 힘들어 하면 다독여 주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사회에 어른은 어디 계신건가요?

모두 젊은이만 할 수 없는거 아닙니까?

제대로 된 어른 한 분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어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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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7일 월요일

7월 4일, 5일 짧은 홍콩

주말동안 홍콩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경비를 아끼느라도 청도-심천-홍콩으로 해서 움직였는데 가는데만 8시간정도 걸리더군요.

아침 8시 5분 비행기가 가장 빨리 가지 않을까 하여 끊었지만..... 솔직히 그게 아니라 제일 싼 항공권을 끊다보니 이 비행기가 칭다오에서 바로 션전으로 넘어가는게 아니고 항저우에서 중간기착을 하더군요. 나 원... 1시간정도 내려서 항저우 공항 구경하다가 다시 타고 션젼으로 향했습니다.
션전에 도착해서 홍콩 완차이까지 가는 직행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심천공항에서 직행버스를 이용할 경우 최소 1시간 30분, 최대 2시간 정도 소요되는군요.
버스비는 갈때는 100 위안인민폐, 홍콩에서 심천공항까지는 100홍콩달러.
인민폐와 홍콩달러와는 1.15~1.25정도 차이 나더군요. 
홍콩달러는 아직도 130원대를 유지하는것 같았습니다.
마카오달러와 홍콩달러는 1:1이구요.
이번에는 마카오는 커녕 원래 계획했던 션전전시회는 참석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상 너무 촉박해서 그냥 훑어보고 온 느낌입니다.

여유있게 2박3일로 다녀오거나 홍콩까지 직항으로 다녀오는게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홍콩을 많이 다녀보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번갯불에 콩구워먹기는 첨입니다.
홍콩은 그다지 변해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작년인가, 재작년 말에도 다녀왔기 때문에 변한걸 찾아내기가 더 어려웠겠죠.

예전에는 션전의 로후역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들어갔지만
, 이번에는 션전공항에서 바로 셔틀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가격도 착하고 택시기사와 흥정하는것도 짜증날것 같아서 선택한 방법입니다.
아마도 택시로 로후역까지 이동해서 고속열차로 갈아탔다면 두배이상의 금액, 아마도 세배의 금액과 광둥식의 보통어와 싸워야 했을걸 생각하니 차라리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게다가 로후역보다 출입국 관리소가 한산해서 좋았습니다.

홍콩 전시회 일정으로 급하게 다녀온 홍콩.
원래는 심천쇼까지 방문해서 유행을 살펴보고 오는것이었는데 시간상 불가능했다.
원래 가기전 계획표
8:05출발 - 12:30도착 - 2시 홍콩쇼 참가 - 6시30분 전시회 종료- 7시 숙소 - 식사후 자유시간
8시 기상-식사후 10시 홍콩쇼 참가 - 2시-심천-6시까지 심천쇼 참가 - 8:50분 비행기-11:30도착

그러나...
8:0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정시에 도착했으나 홍콩컨벤션 센터에 도착한건 오후 4시.
심천에서 홍콩으로 이어지는 교통편이나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걸리고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심천쇼는 포기하고 홍콩쇼에 매진하기로 하고 5일 하루를 홍콩쇼에 전력투구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암튼, 사진으로 보는 짧은 홍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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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저렴한 항공권을 위해 중간기착지로 들렀던 항저우의 공항.
약 30분여를 머물렀다가 다시 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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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공항은 그다지 볼것이 없는 그럭저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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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공항에 도착해서 홍콩으로 들어가는 법을 알아봤더니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한번에 가는건 버스.
가격도 착하다.
사진은 심천에서 각 지역으로 들어가는 목적지와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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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출입국 관리소로 들어가서 간단한 심사를 받고, 다시 버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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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탑승한 버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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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완차이에 있어서 가는 도중 만난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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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나와 전시회장으로 향하다가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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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벤션 센터는 아직도 공사중. 아니 업그레이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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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관할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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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벤션 센터에서 바라본 홍콩섬 센트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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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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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아시는 편도 MTR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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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었던 JJ 는 욕실이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막을 수 있도록 브라인더가 되어 있지만, 뜨거운 물을 틀면 금새 뿌옇게 되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무선인터넷 속도도 괜찮았고, 원하면 룸당 2개의 DVD를 무료로 대여해서 볼 수도 있다.
암튼, 쾌적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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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트램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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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C two에 올라가기전 시간이 남아 먹었던 샐러드, 그리고 에스프레소 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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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55층까지 초고속이다.
1층 안내데스크에서 사진붙은 증명서만 있으면 간단한 체크 끝. 내가 조금 이상하게 생겼는지 묵고 있는 호텔을 물어보더라... 그 여자, 내게 흑심을? ㅋㅋㅋ
암튼, 여권으로 체크하고 올라가니 우글우글 독일애들이 떠들고 있었다.
사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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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층에서 내려다 본 홍콩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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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층은 화페전시장과 도서관을 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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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공항에서 청도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스페셜 메뉴 78위안짜리 식사를 시키면 이렇게 차를 한잔 준다. 뜨거운 커피와 차, 아이스커피와 아이스차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 차를 선택한건 탁월한 선택. 너무 맛있었다.
비행기시간때문에 다 못마시고 일어나야만 했던 아픈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