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키다, 가르치다.
나르다, 날으다.
꾀죄죄...
착잡하다....
국문학과를 나온것도 아닌데 단어철자에 신경쓰냐고 한다면 할말없다.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단어를 틀리고 있다는데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이 분이 조선족이신지, 당연한 한국인이신지, 외국에서 오래살고 오셔서 그런건지 헷갈릴때가 많다.
뭐... 이해를 하고 넘어가도 되련만, 이상하게도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인다.
제일 많이 틀리고 있는 '가리키다'와 '가르치다'.
정말... 정작 학생을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제일 많이 틀리신다.
사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방향을 지시하는데 사용하는 가리키는걸, 학생들을 가르치는 뜻으로 주로 사용하신다.
나도 국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기에- 원래는 잘했지만-뭐 학창시절에는 누군들 못했겠냐... 나이 먹어봐라 그게 맘대로 안된다.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최소한 글을 사용하면서 '네이버'나 '위키'에라도 물어보는 자세는 어떨까?
저도 글 한번 쓸때마다 고민을 수십번은 한다.
이게 띄어쓰기가 맞는건지, 철자는 맞게 사용한건지, 따옴표나 쉼표는 적절한지...
예~ 물론, 학창시절엔 그런걱정 없었다.
나이 먹다보니까 그렇게, 헷갈리게 되더라구.
그래도 그래도...
이 정도는 타자에 의한 오탈자라고 생각할 정도의 갯수였으면 좋겠다.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까 그렇지 않아도 게시판글이 점점 줄고 있는 마당에 찬물을 껴얹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껴앉는건 맞는 표현인가?.......... 끼얹다가 맞네.. 방금 네이버사전을 찾아보고 다시 왔다.
많은 사람들이 끼얻다로 사용하고들 있으시군요.
이런식으로 글을 쓰려면 너무 힘들고, 신경쓰이지 않냐. 너무한다. 라고 하실지 모르겠다.그러나 결국 내 자신의 문제이고, 내가 신경쓰다가 못참으면 글쓴이에게 직접 따지던지, 내속에서 혼자서 삭히든지 해야 하는거죠.
다른 단어들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거나 아는척 하지 않겠다. 그게 낫겠다.
나의 아내 자영, 아들 영찬이와 함께 하는 중국, 한국, 그리고 세계의 이야기들. Warm tale of the world with my wife, Ja Young and my son, Yeong Chan.
2007년 8월 10일 금요일
글에 대한 책임.
2007년 8월 4일 토요일
이송희일 감독, 글 참 시원하고 맛나다.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글을 쓰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첫번째 글을 '첫섹스' 라는 글이다.
1.
자주 인용하는 말이지만, '첫 섹스는 그 이후 모든 섹스의 기억이 된다'라는 말, 이따금 되새길수록 참으로 신통방통하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 어디선가 책에서 건져올렸을 텐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요게 내가 지어낸 말인지 원본 그대로의 텍스트인지 알 길이 없다.
여하간에 신통방통하게, 내가 스무 살에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던 어느 이상하고도 낯선 소설 속 이미지와 가장 강렬하게 근접한 이 자구는 (맙소사 이 순간에 그 책 표지만 생각날 뿐 저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춘기 소년소녀의 열망과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거리는 노쇠한 늙은이 기억의 끄트머리 미망의 원천일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래, 그건 느낌이고 확신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첫 섹스를 하겠지만, 결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는 바로 그 강 속으로 코끼리처럼 걸어들어간 헤라클레이토스의 탄식과 달리 그 떨림의 기억은 다시 반복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공명의 리듬으로 출몰하기 마련이다. 떨리는 손길, 우주 속으로 미끄러지는 현기증, 마른 흙과 풀잎의 내음, 땀과 체액의 교환, 탄식과 실망, 그리고 그 순간 부쩍 성장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지경의 영도에 한 발 딛게 되는 자아.
섹스를 감춰야 되는 것, 하지만 누구나 모든 순간에 사면 벽의 광고처럼 쉽게 접하고 있는 이 역설의 사회에서 '첫 섹스'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음란한 사회에서 첫 섹스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섹스를 부끄러운 것, 자기 몸에서 너무 소중한 것,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입에 달고 다니는 이 모순과 역설, 그 음란하고도 가부장적 체계에서 첫 섹스는 소년의 떨림으로, 소녀의 자각을 이끄는 통과 제의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도시의 '쿨함'은 근대가 고안해낸 가장 치명적인 마음의 병이다.
그런데 왜 나는 한 번도 이런 순간을 영화에 담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 까트린느 브레야 영화에 치를 떨고, 치명적인 도회 인간들의 외로움을 여관 방에 떨어진 휴지와 등치시켜 낄낄대는 영화들과 그런 영화들을 실컷 빨아주는 자칭 모던한 영화 평론가들에 학을 떼면서도. 하긴 아직 내 마음이 그토록, 넓어지지 못한 까닭이지 싶다. 아마 소심하게 바싹 늙어버린 까닭이지 싶다.
이번에 잘 해낼 수 있을까?
2.

르네 오브리. 아마 한국 영화 '인터뷰'에 그의 곡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면 난 정작 르네 오브리에게 편지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싸게 좀 씁시다.' 정서를 밀어붙이기 위해 뭔가를 쓸 때마다 꼭 한 번씩은 찾아 듣게 되는 그이지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새침한 변별에의 의지.
그리고 지금 인터넷검색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300억짜리 루즈 발랐다고 예뻐지냐?'라는 글이다.
가만.. 이 제목은 기사제목인가? 헷갈리네.
제목이 중요한게 아니라 정말 글을 시원하게 잘 쓴다는 사실이다.
막가파식으로 심형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
1.
막 개봉한 <디 워>를 둘러싼 요란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최종적으로 느낀 것은 막가파식으로 심형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 <디 워>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는 점이다. ‘헐리우드적 CG의 발전’, ‘미국 대규모 개봉’ 등 영화 개봉 전부터 <디 워>를 옹호하는 근거의 핵심축으로 등장한 이런 담론들과 박정희 시대에 수출 역군에 관한 자화자찬식 뉴스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는 여전히 70년대식 막가파 산업화 시대이고, 우리의 일부 착한 시민들은 종종 미국이란 나라를 발전 모델로 삼은 식민지식 반쪽 나라의 훌륭한 경제적 동물처럼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엉망인데 현란한 CG면 족하다고 우리의 게임 시대 아이들은 영화와 게임을 혼동하며 애국심을 불태운다. 더 이상 ‘영화’는 없다. 이 영화가 참 거시기하다는 평론가들 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악다구니를 쓰는 애국애족의 벌거숭이 꼬마들을 지켜보는 건 정말 한 여름의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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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블로그에 영화 <디 워>를 향한 쓴 소리를 올려 논란이 된 이송희일 감독. | |
| ⓒ 청년필름 |
심형래씨는 700억 영화짜리 말미에 감동의 다큐와 감동의 아리랑을 삽입하고, TV 프로그램마다 나와서 자신의 열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고지깔 안 보태고 영화판에 몇 만 명은 족히 존재할 게다.
지구가 존재한 이래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아서 영화를 찍어놓고 누가 누구를 천대했다는 건지, 참나.
3.
충무로가 심형래를 무시한다고? 정작 심형래를 ‘바보’로 영구화하고 있는 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충무로라는 영화판은 대중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애증의 욕망의 대상이다. 스타들을 좋아하지만, 반면 끊임없이 스타들을 증오하는 두 가지 배반된 욕망의 투영물인 셈. 이는 스펙타클화되어 있는 정당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갖는 이중의 배리되는 시선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정당 정치에서 배제된 듯 보이는 ‘바보’ 노무현은 잘 살고 거짓말을 일삼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유일한 대항점으로 시민들에게 비춰지면서 대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심형래는 이와 다르지 않다. 충무로에서 지속해서 배척된다고 가정된 바보 심형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심형래의 아우라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저 기존 충무로에 대한 환멸이 투영되어 있으며, 바보는 여전히 바보로서 시민들에게 충무로에 대한 환멸의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보 전략’은 바보 아닌 것들을 비난하며, 서로를 바보, 바보 애정스럽게 부르다가 끝내는 정말 바보가 되어 선거함에 투표 용지를 몰아 넣거나 친절하게 호주머니를 털어 티켓값으로 교환해주는 바보 놀이, 즉 아주 수완 좋은 훌륭한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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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박스 |
CG가 중요한 것도, 와이어 액션이 중요한 것도, 단검술과 권격술의 합의 내공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조차 정리가 안 되어 있다면, 그 아무리 입술에 때깔 좋고 비싼 300억짜리 루즈를 발랐다고 해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5. 좀 적당히들 했으면 좋겠다.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아니다. 하긴 도처에 난립하고 있는 온갖 징후들로 추측해 보면, 이 하수상한 민족주의 프로파겐다의 계절은 꽤나 유의미한 악몽의 한철로 역사의 페이지에 기록될 게 분명하다. 아, 덥다 더워.
아무래도 난 이송희일 감독의 팬이 되어버린듯 하다.
첫번째 글 출처는 이송희일 감독 블로그인데... 지금 모두 다운되어버려서 어떻게 표기를 해야할런지... gondola21.com
두번째 글은 오마이 뉴스( ohmynews.com )에서..
2007년 8월 1일 수요일
짜증...
아프간에 가서 텔리반에 잡혀있는 사람들 중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그리고 그들의 종교행위에 대해 옹호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어.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키보드로 반대입장을 내고 있다고.
다들 그네들을 욕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성자라도 된다는거야?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의 신념을 믿고 자기 목숨을 사선으로 던진 사람들이잖아?
키보드 뒤에 숨어서 쉽고 편한 삶을 살며 그들을 비난하는 자들을 보면
난 상당히 짜증이 나.
그래서 열받은거라구.
불평은 젊은이들이 하는거라구.
나이 든 사람들과 기성세대는 할말이 없어.
이렇게 만든, 거지같은 세상과 형편없는 도덕률이 판치는 나라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잖아.
아마 이거 배철수형님이 말씀하신거 같은데...
나이 먹을만큼 먹고서 되지도 않는 비아냥과 비난이나 해대고 있다니 꼴사나워.
기성세대들이 이렇게 만든 책임을 지는게 맞는거잖아.
그런데 어따대고 빈정거리는거냐구.
나도 이미 기성세대에 들어섰지...그러니까 제발 우리가 형편없이 만들어 놓은 개같은 세상에 대해 포용하고, 인정하고, 끌어 안고 가야하는거 아니냐구.
나이 어린사람들은 비아냥거리고 빈정거리고 투덜거리면 우리가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나도 잘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저질스러운 사회를 만들어 죄송하다고 고개숙여야 되는거 아니냐구.
비판과 토론을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고 변명한다면 그것까지는 들어줄께.
원래 그걸 못해봤고, 정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