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서로 친구가 되기가 쉽다.
그리고 위아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라는 명제 아래에 썼던 글입니다.
그냥 제가 쓴 글에 대해서는 이렇게 모아두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친구가 쉽게 될 수 있는 민족성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와 같은 생명의 위험에서부터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공산당의 시퍼런 칼날의 억압에서 살아남아야만 했고, 타지역민과의 갈등에서 많은 상해를 입고, 물질적인 강탈을 당했죠.
복수라는 목적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린 그 세월을 이긴후에야 겨우 지금의 민주주의라는 꼬리끝을 잡고 살아내고 있는 중국인민들입니다.
먹을것이 없어서 어머니를 살해에 인육으로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는 비사가 정말로 믿어지기도 하고, 지금도 길거리에서 사형을 실시한다는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들리는것도 다 지나간 역사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천안문앞에서 수 많은 민족지도자와 학생들이 죽어나갈때에도 이네들의 생명경시풍도는 이미 알았어야만 했습니다.
그 가운데 서로 죽이지 않겠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친구라는 단어가 필요했습니다.
난 너에게 해꼬지 하지 않을테니 너도 나에게 그러지 말아라. 서둘러 서로에게 보험처리를 하는거죠.
폭력앞에서는 장사없습니다.
모두 평등합니다.
그렇기에 장관과 구두닦이가 서로 친구가 됩니다.
복수의 칼날앞에서는 누구가 목숨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이와 할아버지는 친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중국에서 친구란 서로 죽이지 않겠다는 신호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살수밖에 없었던 그네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네들이 가장 불쌍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죠.
지금도, 지금 현재도 서로 친구가 되지 않아서 맞이하는 죽음이 가까운곳에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중국인과 친구가 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가 되기는 죽음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를 위해 생명과 재산을 모두 내놓을 수 있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가족보다 더깊은 삼고초려, 도원결의가 친구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친구의 의미는 극과 극입니다.
서로 죽지 않기 위해 친구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친구가 됩니다.
좋은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구글 검색에서 우연히
답글삭제선생님의 홈페이지를 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프라하""! 멋진데요..
항상 건강하십시오 .. 그리고 제홈페이지에 위엣글 스크랩했습니다..
홈페이지가 아직 좀 싱그워서... 창피하지만.. ...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