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31일 화요일

아! 애통함이여!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새벽부터 들려옵니다.
피랍자 중 한사람이 피살당했다는 소식입니다. 아직 정부에서는 공식적인 의견이 없어서 정확한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봐야 알겠지만, 사실이 아니길 바랄뿐입니다.

우리나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아십니까?
그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하신 그분의 손자는 의사로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봉사와 근면을 실천하시면서 살고 계십니다.
영국계 캐나다인이신 스코필드박사님은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다가 대한민국 독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외국인으로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계십니다.

아마 서양인으로는 유일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적은 선교사와 자기의 종교를 알리기 위한것이었을지라도 그들이 행한 일들은 모두 선량한것이었고, 우리나라를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진정으로 임했던 그들의 순수한 목적만큼은 현재에 와서도 바래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100여년전 그들이 조국을 떠나 머나먼 타지에 도착했을때는 지금처럼 방송이나 우편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이고, 서로에 대해 큰 이질감으로 등돌릴 수 있는 험악한 시기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얼마나 배타적으로 대했을지 지금 우리민족이 정치판에서 보여주고 있는 꼴을 보면 더하면 더했을거라는 생각입니다.
돌 던지고, 침 뱉고, 쌍욕하고, 때리던 민초들에게 고급의술과 식량과 교육과 사랑을 전하신 분들입니다.

조상신을 무시하고, 유일신만 믿으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여자와 평등하라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랍니까?
종과 양반이 동등하다니요? 이게 말이나 되는일입니까?
기술이 인문을 이긴다니요? 세계 최고의 덕목은 유교뿐이었지요.
지금 중국도 학문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유교를 우리는 종교처럼 믿어왔으니 말입니다.
암튼, 그들이 행한 일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벗겨내고, 죽이고, 묻기위해서였습니까?

지금 아프간의 피랍자들을 향한 우리 네티즌을 비롯한 국민들의 태도가 외국언론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는 계십니까?
네티즌끼리 아귀다툼을 한다고 일본언론은 전하고 있으며, CNN과 BBC에서도 한국내 여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워낙 인터넷이 발달했으니 출처는 밝히지 않아도 모두들 잘 찾아서 보시겠죠.

선교가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선량한 봉사가 먼저였고, 사랑의 치유가 우선이었습니다.
개종을 입이나 글로 떠드는 수많은 국내의 기독교인보다는 치료와 구제와 봉사로서 말보다 앞서 글보다 먼저 손수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 떠밀어서 그들에게 수동적으로 나아간게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한길에 대해 그들은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과 산모들, 약없이 쓰러지는 노인들과 병자들을 위해 그 오지에 발을 딛은것입니다.

국내에도 헐벗고 굶주린 이들이 많은데 뭐하러 그렇게 위험한 지역으로 갔냐고 하시는 분들에게는 할말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그 수 많은 입양아들을 왜 수출하는지 아시는 분들이지요.
미국과 캐나다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에 와서 도움을 주고, 식량을 주고, 건물을 지어주고, 의술을 베풀었을까요?

사랑과 선량의 목적으로 신이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인 몸뚱이를 이끌고 그 험한 오지로 나아간 사람들이 어느 지역, 어느 소속, 어느 종교, 종파를 떠나서 그네들의 목적은 사람을 사랑하는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러 간 그곳에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떨고 있습니다.
총부리가 내 머리를 겨누고, 무디고 거대한 정글칼이 내 팔다리를 향합니다.
설사 선교를 하러 갔다고 해도, 그 나라의 사상을 흔들려고 했다 해도, 총부리앞에서 거대한 칼 앞에서 그랬겠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그것도 사람을 사랑하러 간 사람들에게 말입니다.지금도 아프칸의 한 어린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배우고 싶어요.
그 얘기를 듣고 여러분들은 그 나라일이니까 그 나라에서 알아서 잘 하겠지.. 라고 하실겁니까?

아프칸의 한 할머니는 이미 죽은 아들을 보고 싶다며 사진을 품에 간직하십니다.
항생제주사만 있었다면 썩어죽지 않아도 되었을 그 아들을 말입니다.
그래도 위험한 지역에서 봉사는 안된다고 하신다면 여기서 선량한 목적으로 간 그네들을 욕해서도, 비웃어도, 비아냥 거려도 안됩니다.
그럴 자격이 없으십니다.

선교를 이용하는건 탈레반입니다.
선교라는 단어를 끌어낸것도 피랍후 며칠이나 지나서야 탈레반 관련자가 얘기한것입니다.
협상의 도구로 탈레반이 이용하고 있는 단어를 여러분들께서도 사용하시면 안되죠.
우리의 인질들이 탈레반에게 이용당하고 있는것을 즐기시는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종교와 종교를 떠나서 사람을 사랑하는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수는 없습니다.
미친 교회의 억압과 핍박으로 강제적으로 억지로 끌려간 선교지일지라도 그네들에게 비아냥거려서도 힐난의 문책을 해서도 안됩니다.
그들을 종교라는 이름위에 마녀사냥을 해서는 안됩니다.

고 배목사의 원하는대로 동남아-아프칸-아프리카의 봉사활동과 선교활동이 이뤄졌다면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서는 도움도 비난도 하지 않을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케냐의 한 어린이는 공부를 원없이 했을것이고, 나이지리아의 한 할아버지는 우리나라까지 와서 심장수술을 받았을것이며, 탄자니아의 한 산모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을것이니까요.
실명한 그들이 눈을 뜨게 되고, 다리 대신 의족을 달고, 총 대신 연필을 쥘때마다 당신은 감동했었죠.
그리고는 이제와서 그 오지에서 테러리스트에 붙잡혀 정부와 국민을 힘들게 한다고 욕설을 퍼붓습니다.
욕설을 퍼붓기전에종교와 종파를 따지기전에책임과 의무를 따지기전에그네들에게
돌던질 수 있으면 돌 던지시라던 예수의 가르침처럼
사람이 스스로 천당이라고 하신 부처의 가르침처럼
사람을 사랑하라는 모하메드와 코란의 가르침처럼

이글을 쓰는 도중에 피살된 그분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애통함을 금할길이 없습니다.우리라도 제발 서로 욕하고 비웃고 비난을 멈추고, 사람부터 제발 살립시다.

진정하면서 글을 쓰는중이었는데 정말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회사 홈페이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회사 무역부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손대고 현재 90%이상 완료가 된 회사 홈페이지.
회사이름을 밝혀 광고나 홍보용으로 사용하려고도 생각해봤지만, 철저히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사이트이기때문에 생략하기로 했다.
회사 홈페이지 주소가 필요하신 분들은 개인 이메일로 문의하시면 알려드릴수도 있지만, 누가 요걸 필요로 할라나 몰라?

그냥 내가 디자인, 메뉴구성, 포샵에 htm, css, java... 등등까지 손을 대서 만들었다고 하기엔....미안하다.
기존의 빌더에 옷을 입힌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정도도 쉽지는 않다. 가끔씩 아무이유없이 끊기기도 하는데다가 512k~1M정도 나오는 인터넷속도를 이겨내며 이미지 작업과 모듈을 활용하는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암튼, 3주이상 예상했던거지만, 이번주나 다음주초면 완료될것 같다.
그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서야지.
이제 제품사진을 제대로 찍어 올리는일이 남았는데 회사용 똑딱이로 가능할까 몰라.. 망치대용으로 사용하는 필카라도 가져와야 하남...
아니면 먼빗에게 빌려야 할까?

외형보다 제품과 내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내용물을 알차게 채워야 할텐데..라는 걱정이 앞선다.

2007년 7월 26일 목요일

취업. 그리고 나의 시간

오전에 일어나면, 아내를 깨우고, 컴앞에 앉아서 메일 확인을 한뒤 아침식사를 하고 네이버 언어연수원 카페를 관리한 뒤,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서 외부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와 아이와 놀다가 인터넷으로 감초역할을 독톡히 하다가 퇴근하는 아내 픽업해서 집에 들어오면 하루 일과가 대강 끝난다.
대부분 점심에 웬만한 비지니스를 끝내기때문에 저녁에 조금 한가하다. 물론, 야식으로 시원한 맥주로 꼬드기는 피플들이 있긴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게 더 좋아 잘 나가지 않았다.
주말에는 그동안 피로에 절여져있는? 연수원생들과 시내로, 산으로, 바다로 나들이 나가는게 일이었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했지만, 내가 귀찮으면 모든 약속이 조정되거나 연기되거나 취소되버린다.

영찬이가 생기고, 아내가 바빠지고, 내 수입이 일정치 않아지면서 조금 삐걱거리는 우리의 관계를 느낄수 있었다.
게다가 그 수입이라는게 용돈수준일때가 많아서 아내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친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래서 결정한 취업.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대신, 나의 시간을 그네들에게 맡겨야 하고, 그 시간을 사업자와 내 월급을 쥐고 있는 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거나 성실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명제의 무엇.

많은 일자리를 컨택했었다. 쉽게 말하면 보수는 많지만, 여유있고, 꾀를 부릴수 있는 직장을 원했던 기본적인 본능에 맡겼던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우랴.
몇 번의 면접끝에(아내는 잘 모른다.) 결국 지금의 회사로 결정이 났다.
아내 회사의 *이사님의 소개로 수훨하게 결정이 난것이지만, 결국 내가 속해있는 부서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아니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곳이므로 입사하고 지금까지 열흘동안 같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지금도 바짝 긴장되어 있는 상태로 하루를 지내고 있지만, 곧 적지 않은 오더를 받고, 바이어들을 늘릴수 있을거라는 묘한 믿음이 있다.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일까? 아니면 아직도 스스로 잘난척을 하는걸까?

아프간에서 하나님 곁으로 간 그분은 사형당할 당시 믿음으로 충만해서 힘들지 않게 돌아가셨을거라는 생각을 나름대로 해보지만, 남은 가족들의 미래가 걱정이다.
남겨진 그의 어린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영찬이만 남긴 내 빈자리는 끔찍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고 있다.
회사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이메일도 새롭게 만들었다.
바이어주소록도 작성하고 있고, 바이어들과 통화도 하고, 팩스도 보내고 있다.
그 데이터베이스로 시간의 여유는 없지만, 물질적으로는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도전하겠지.

그래서 그동안 시간이 부족해서 업댓도 못하고, 글도 못남기고, 카페관리도 못했다고 변명하기 위한 글이라고 해도 할말없지만, 인간은 적응력의 황제이므로 곧 여유를 가지게 될것이리라.

오늘 낮에 장문의 글을 쓴다는것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냐는 말이다.

2007년 7월 3일 화요일

바다를 정복했던 사람들과 정복할 사람들

라트비아의 리가 해변에서 서쪽으로 가다 보면 베터스비어트라는 작은 어촌이 있다. 이곳의 어부들은 자손 대대로 고기를 잡으며 몇백 년을 살았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바다에 나간 모든 어부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발트해의 거센 바닷바람이 육지를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가을에는 더욱 그렇다.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모두 일손을 놓고 모자를 벗어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부모형제가 물려준 위험하고도 무거운 사명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결코, 바다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아주 먼 옛날, 마을의 선조는 이 바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놓았다.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과 죽을 사람들을 기념하며 ---'.

 언뜻 보면 너무도 슬픈 내용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 글은 매우 용감한 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자기의 일을 꿋꿋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신념이기도 합니다."

발췌 : 지혜(지양용, 비즈니스맵)

윗글을 발췌해 오면서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중국이 바로 라트비아 베터스비어트사람들이 얘기하는 '바다'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민족은 원래 기마민족이었습니다.

중국땅을 호령하며 대초원과 산악을 휘돌며 호령했던 그런 장수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입니다.

그 역사뒤에 숨어서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농경으로 사회를 꾸려나갔던 농경민족도 있었지만, 그네들이 역사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칠레와 미국과 FTA에서도 어느정도 배제되는 모습만 보더라도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지배하는듯 합니다.

그 천하를 호령하던 민족의 우두머리들이 몽고로, 만주로, 심지어 터키와 스페인, 아프리카까지 흩어지고 한반도에는 적은수의 민초들이 남아 대륙열강의 침략속에서 끈질긴 잡초처럼, 겨울에 눈을 뚫고 피어나는 인동초처럼 키워졌습니다.


바로 그 민족이 깨지고, 부서지고, 죽을지언정 대륙으로 대륙으로 쏟아져 나온지 이제 10여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네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정말 많이 변했다고들 말씀하십니다.

저야 이제 얼마 안되어서 감히 그런얘기 못하지만, 중국오시는 새내기들께는 술한잔의 허풍담아 중국이 많이 변했고, 그러면서도 얼마나 변할지 모르며, 처음 들어온 분들보다는 제약이 많아 고생할거라는 약올림에 더해서 살기 좋아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주절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시쳇말로 박터지더라도 들어오실것이고, 여기서 제대로 박터지신 분들 또한 기회를 다시 엿보실것입니다.

무슨 기회라뇨?

중국에 다시 들어와 재기할 기회죠.


현재 중국은 이제 외자기업을 반기지 않습니다.

달러보유국으로는 최고일인자가 된데다가 웬만한 기업의 돈줄따위는 눈에도 차지 않습니다.

유수의 외국기업의 중국기업에 대한 M&A들을 정부에서 그윽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거품이라고 주장하는 주식시장에도 내국인 보호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그동안 3년간이나 주던 세금혜택을 아예 삭제해버리고, 탈세 및 환경오염에 대한 잣대를 외자기업 우선으로 들이대며 괴롭히고 있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중국내 외자기업의 51%가 적자기업으로 신고 되어 있는걸 중국정부에서 뒷짐지고 가만 있지 않겠다며 세금포탈 및 이중장부에 대한 조사를 해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90%이상 적자기업으로 되어 있는 한국기업이 중국정부가 보기엔 눈에 가시죠.

3년간이나 면세혜택 줬는데, 그 이후에도 적자 나서 세금징수가 안되니 외자기업이 '달라벌이'명목외에는 장점이 없는것으로 보이니 이제 그네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달았나봅니다.


게다가 더한것은 이제 노동법이 강화되어 노조간의 계약서를 의무화 하고, 퇴직금을 신설할 예정이랍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말 안듣고 효율낮은 공인들에게 머리숙여야만 하는일이 더 생기고 있는거죠.


그럼, 이제 우린 '바다'로 나가면 안될까요?

이미 바다 한가운데 나왔으니 앞으로 노를 젓던 손으로 헤엄을 치던 울며겨자먹기로 견뎌야만 할까요?


그렇다고 기회와 방법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게시판에 그런글들을 적을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직하게 사업하시고, 투명경영하시고, 노사간의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고, 경영이념을 공부하셔서 현장에 실천하십시요...

라고 얘기한다면 되겠지만, 그렇게 될것 같으면 그게 사업입니까?

석사 논문감도 안되는 애들 리포트지...


다른나라가 중국이라는 바다에 들어오기까지 3년, 들어와서 5년, 파산절차 2년...해서 10년만에 손들고 나갈때 우린 어땠습니까?

물론, 철두철미하게 팬티한장까지 실패한분도 계셨겠지만, 3개월 준비해서 들어와 여기서 중국어 익히고, 중국문화 술로 익히고, 직접 발로 뛰어서 10년이상 사업체를 끌고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기업의 대다수가 말 그대로 헝그리정신의 라면정신이었더랬죠.


그러나 이젠 조금 바뀌어야 합니다.

라트비아의  베터스비어트사람들이 바다로 바다로 나가고 있지만, 기술은 보다 세련되었고, 현대화 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수집할줄도 알고, 데이터에 의한 고기잡이를 익혀가고 있겠죠.

과거의 것만 고집하진 않을것입니다.

중국이, 우리의 바다인 중국이 변한다면 우리도 그와 맞춰 변하면 됩니다.

조금더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말입니다.

중국을 정복한다는 말을 쓰기에는 중국이 두렵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중국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진행되어야 할 '곳간'입니다. 2차, 3차 '캠프'이고, '전진기지'입니다.

그러나 방법은 과거와 달라야 하고, 달라져야만 합니다.

그 해답을 이곳에 올려놓지는 않겠습니다. 아니, 저에게도 해답은 없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좀 더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해답을 찾아 이제 어리버리 들어와 아는척 하는 1.5세대이후 세대의 교육을 맡으셔야 합니다.

말 안듣는다고 답답해 마시고, 멀치감치 바라만 보시며 한숨 쉬지 마시고, 우리네 교육을 위해 여기 계시는 재중한국인들부터 달라져야 할것입니다.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중국을 교육하고, 중국인이 중국인에게 한국을 교육하는 지금, 현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다를 정복중이고, 정복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