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9일 토요일

아시아나 왕복 항공권

22일에 있었던 송년회는 남다는 경험이었다.
혼자 혹은 둘만 참석하던 분위기에서 영찬이와 함께한 송년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까지 남아서 행운권 추첨을 했는데 그동안 살아오면서 복이라고는 없었을것 같았던 우리에게 영찬이가 가져다준 복이라고 믿고 싶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제일 좋은 선물중의 하나인 청도-서울 왕복 항공권.

물론, 내가 당첨된것이 아닌 아내의 번호로 당첨되었기때문에 그녀가 나가서 상품을 수령해 왔다.
그녀의 귀여운 웃음과 함박 웃음을 보면 지금도 설레고, 재미나고, 흥분되며, 그리고 감사하다.

봉준이가 찍어준 사진.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다.

영문도 모르고 안겨있는 영찬이의 모습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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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찬이가 웃을때 눈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것 같다.
저 눈웃음에 넘어간 나. ㅋㅋㅋ

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영찬, 한달간의 기록

10월 17일.
영찬이가 파르라니 머리를 깍은 날.
탯줄이후로 처음 칼과 가위를 몸에 댄 날이다.
울기도 많이 울고, 뭔가 알지못하는 공포감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텐데 미소를 지어 우리를 안심시킨다.
동자승같아~ 귀여운 표정, 표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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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곤볼에 나오는 녀석과도 많이 닮았단 말이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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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잘 놀다가도 가끔은 심퉁섞인 표정으로 우리를 긴장시킨다.
자기가 놀고 있을때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이다.
영찬이 할머니가 찍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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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하고 나니 완전 스님이시다.
누드사진을 몇 번 올리긴 했지만, 머리를 밀어버린채 이런 누드는 파격이 아닌가!
은근 섹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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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에 대해 연구하다가 카메라에 잡힌 영찬군.
그때만 해도 장판과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장판을 못살게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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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형님 집들이에 갔다가 일회용 식기를 모자대용으로 쓰고 한장~
얼굴이 작아 그릇모자가 나름 어울리면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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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호텔에서 브런치식사를 하던 날.
우리 자기는 영찬이 뒷감당에 제대로 음식맛도 못본것 같다. 고마워.
아마... 대중식당에서 어린이용 의자에 않은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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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찬이는 엄마의 간식을 무지 좋아하는데 뻬뻬로를 먹으려고 얼마나 애쓰던지...
그래서 결국 사또밥 몇조각을 얻어먹는데 성공한 영찬.
이 사진은 성공전 인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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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지 어른의 포스가 느껴지는 모습.
머리가 그새 많이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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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찬이와 엄마.
셀프직찍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폐인이라고 올리지 말라는 자영씨의 부탁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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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바구니에 들어가서 노는 영찬.
뭐든지 자기것이다.
그리고 그게 관철되어야만 땡깡이 멈춘다.
그날도 결국 이곳에서 실컷 놀고나서야 나왔다.
우리집의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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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화초가 영찬이의 머리를 히피로 만들었다.
묘한 느낌인데... 아주 불량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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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게임을 하고 있으면 뭐라고 그리도 참견을 하는지...
꼬박꼬박 대답도 하고, 뭐라고 훈수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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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찬이가 달라고 보채는걸 막아내고 있는 엄마.
엄마는 마리오게임의 천재다.
난 21세의 두뇌까지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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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머리도 많이 자라고, 당근을 통채로 들고 자유자재로 돌아다닌다.
보행기 또는 기어서이긴 하지만...
집의 세간이 남아나지 않는다.
뭐가 그리고 신기한지, 열어보고, 뜯어보고, 만져보고, 때려보고, 당겨보고, 물어본다.
점점 집안이 부서지고 있다.
그래도 좋다.
영찬이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나에겐 새로운 기록이며, 영찬이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오늘, 11월 26일. 영찬이가 머리를 밀어낸후 한달 열흘만의 기록이 웬지 짧게만 느껴진다.


2007년 11월 23일 금요일

사진? 카메라에게 충성을!

예전엔 카메라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거나 제한적이었다.
당연하지, 카메라 한대 가격이 집값과 맞먹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한두달 월급이나 카드 할부로 구매하면 비싸더라도 원하는 카메라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무지하게 비싼 카메라들이 있긴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살수도 있다.
집보다는 싸니까...ㅋㅋㅋ

옛날에는 내가 선택한 카메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이 카메라로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이 나오고, 내가 만족하고, 남이 만족해야 하는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조금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찍다가 안나오면 처박아둬버리는 그런 물건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갑부들도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리하지 못했다.

목에 메달고 다니기만 해도 '뽀다구' 나는 물건이었던거다.

그냥 사치품목으로 알고 있던 서민들이 카메라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게 얼마 되지 않는다.

디카의 보급은 카메라의 대중화를 이끌었을뿐 아니라 사진의 수준도 많이 향상시켰다고 얘기들 한다.
한 가정에 한대정도는 있을뿐더러 일인당 하나씩 가지고 있는 가정도 많다.
회사에서도 여러가지 용도로 많은 디지털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

난 지금 다들 가지고 있다는 DSLR 하나 없다.
일부러 그랬다면 나의 신념과 의지가 뭔가 있겠거니 했겠지만, 아직 구매하지 못해서이다.

무작정 니콘 D70s를 구매해서 셔터를 마구 눌러대고 다니다가 아는 동생에게 팔아넘기고는 아직까지 후속타를 못만들고 있는것뿐이다.
그러나 그 D70s는 나에게 화인더의 장점과 묘미를 알려주었고, 사진에 대해 한단계 더 깊게 빠지도록 했다.
그동안은 단순하게 보고 셔터만 눌러대던 시절이었다면, 그 카메라 이후로는 한번씩 생각하게 되는 것이 생겼다는 거다.
어두우니 ISO를 확인하자, 렌즈를 바꾸자, 아웃포커싱을 위해 조리개를 조이자.. 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버벅거린다.
순전히 독학으로만 만져댄, 그러니까 작동을 시킨게 아닌, 그냥 만지고, 누르기만 한 카메라에 대한 의식이 생겼다고 할까?
 
지금 내가 가진 카메라는 니콘 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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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8년도에 만들어진 칼자이쯔 렌즈가 달린 목측식 RF카메라, 골동품이다.
      품명 : 클래식 카메라 (목측식)
      바디 : 알티샤 (독일)사의 가장 후기 모델 : 알틱스 엔비
      렌즈 : 칼자이스 테사 50mm  f2.8 (독일) 필터구경 36mm
      셔터 : b ~ 1/500
      싱크로접점 : 있음
      노출계 : 셀레늄 노출계 내장되어 있으며 작동 잘 됨
      상태 : 생산년도 1958년임에도 거의 민트급이며 전기능 이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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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구매하려고 하는 카메라는 D300이지만, 이걸 내가 잘 알고 사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 수준으로는 D70, D80만 되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왜 자꾸만 니콘으로 가냐구?
가진 렌즈가 모두 니콘이기 때문이다. 아참, 게다가 플래쉬도 니콘일세...쩝..

결국 기계와 렌즈가 찍어내는 것이 사진이라면 사람이 찍을 필요가 어디있냐구.
사진이 나오는건 사람에 의해서다.

그러니까 장비 탓하지 말고, 열심히 내공을 길러보자. 는게 나의 주장~ 헤~

엥겔지수와 엔젤지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시근로자의 가계 소비지출 중 식료품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즉, 가계의 소비지출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계수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엥겔계수는 떨어지는 반면, 문화생활비와 통신비의 비중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도시에 살고 있는 가구는 한 달에 사교육비로 15만2천원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교육비의 증가세도 이어지는 등 엔젤지수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엥겔계수(Engel's coefficient)란 19세기 독일의 통계학자 엥겔이 발견한 법칙으로, 가계의 총지출액에서 차지하는 식료품비의 비중을 가리킨다. 식료품은 필수품이기 때문에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일정수준을 소비해야 되므로, 소득이 높아지면 엥겔계수는 하락하고 소득이 낮아지면 엥겔계수는 올라가게 된다. 엥겔계수가 높다는 것은 생활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이며, 반대로 엥겔계수가 낮다는 것은 생활 수준이 풍요로운 셈이다.

[예문] The Engel's coefficient in this country is dropping year by year.
  이 나라의 엥겔계수는 매년 하락하고 있다.

또한, 도시근로자 가계에서 사교육비가 늘고 있다는 것은, 엔젤지수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엔젤지수(angel coefficient)란 가계 총지출에서 자녀의 교육비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의 비율을 말한다. 엔절지수에서 angel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천사'의 의미라기 보다 유아에서 초등학생 연령층의 어린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취학 전 아동을 주요 소비자로 삼는 산업을 엔젤비즈니스라고 하고, 유아부터 초등학교 어린이를 수요층으로 하는 신종산업을 엔젤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angel business나 angel industry를 사용할 때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라는 부연설명을 충분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말하는 angel은 투자와 관련되어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ngel (investor)을 엔젤투자자라고 하는데, 이는 기술력은 있으나 자금이 부족한 창업초기의 기업에 자금지원과 경영지도를 해주는 개인투자자를 말한다. angel investing은 창업초기의 회사에 투자를 하는 엔젤투자를 말한다.

[예문 1] Angel investors are an essential component to any healthy entrepreneurial economy.
 엔젤투자자들은 모든 건전한 기업 경제에 있어서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예문 2] The expert said that the rate of return for angel investing was good.
 그 전문가는 엔젤투자의 수익률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냥 퍼왔다.
기초적인 상식이지만, 가끔은 헷갈리지 않을까 하여 시사영어사 홈피에서 퍼왔다.
이렇게라도 글을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볼까 한다.

2007년 11월 20일 화요일

84년 된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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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만들어진 카메라 한 대가 경매를 통해 336,000(약 4억5000만원)유로에 팔려, 소형 카메라 중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종류로 이름을 올렸다고 18일 오스트리아 경매 회사 갤러리 베스트리히가 발표했다.

4억5,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 카메라는 1923년 독일 라이카에서 미국 수출용으로 만든 제품으로, 당시 20대만 생산되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

모든 기능이 완벽하게 작동되는 35mm 카메라를 구입한 이는 유럽에 거주하는 카메라 수집가로 알려졌다.

이 카메라는 35mm 카메라 경매 역사 상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종류라고 외신들은 전했는데, ‘세계 최고가 카메라’ 기록은 지난 5월 같은 경매 회사를 통해 판매된 1839년 산 은판방식(다게레오 타입) 사진기. 프랑스 화가 L. 다게르가 발명한 이 사진기는 당시 7억4000만원에 팔렸다.

(사진 : 4억5,000만원에 팔린 소형 카메라 및 세계 최고가 카메라의 모습 / 경매 회사 홍보 사진)

박운찬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


아래는 원문, 발췌 주소


12th WestLicht Photographica Auction was ended successfully!

On Saturday, the 17th of November 2007 the 12th WestLicht Photographica Auction ended with a sensation: the most spectacular lot of the auction, a 0-Series Leica No. 107 was sold for an unbelievable 336.000 Euros hammer price incl. premium – the highest sum ever achieved at an auction for a 35mm camera or a Leica.

Numerous bidders from all over the world took part in the camera auction including some from Korea, Japan, USA and various parts of Europe. The most recent auction was able to out-shine the high standards of previous auctions both in total turnover as well as the percentage of sold lots. Over 90 % of the total of 823 lots were auctioned off for a total of more than 1.5 million Euros.

World record for a Leica: 336.000 Euros!

By accepting the bid of a privat European collector, the auctioneer turned a slender black camera into the most expensive 35mm camera and the second most expensive camera ever auctioned off!

Only approx. 21 of these cameras were produced to test the market in 1923, 2 years before the commercial introduction of the Leica A. The auctioned camera is the seventh camera of the Leica 0-series. The factory records indicate the delivery to New York for patenting. This means that this camera is not only one of the major rarities existing, it is also the first Leica to be exported.

The existing world record for a camera was also established by a WestLicht Photographica Auction: a Daguerreotype by the Paris manufacturer Susse Frères from 1839, was sold for an unbelievable 580.000 Euros at the auction in May 2007.

The other highlights amongst the Leica lots were the M3 gold no.834000 for 51.600 Euros and a M3 black paint for 22.800 Euros. At this auction also two Leica lenses could achieve remarkable high results: a Summicron 2/5cm Prototype and a Noctilux 1.2/50mm have been sold for 19.200 Euros each. Generally speaking the prices for Leicas and accessories were very solid. Nearly 100% of the Leitz articles were sold and very often the estimates were considerably exceeded.

Also some of the Nikon cameras achieved notable prices: a Stereo-NIKKOR outfit was auctioned for 39.000 Euros and a Nikon F High Speed for 19.200 Euros.

Extremely high increases were also registered in the case of the large selection of stereo lots we offered this time: the famous Hirst and Wood 'The Natural Stereoscope' went for 19.800 Euros and the extremely rare Stereo Sigriste camera was sold for 17.400 Euros. Two previously unknown stereo viewers were also able to achieve record prices: the 'Autosynoptomètre' viewer by Giroux was auctioned for 9.000 Euros the 'Isostereoscopio' by Carlo Ponti by 7.800 Euro.

All price quotes include auction charges. The next WestLicht Photographica Auction will take place in May 2008.


후략...

http://www.westlicht-auction.com/index.php?lang=3


대단하다.
84년된 카메라가 완벽 작동하는 것도 놀랍지만, 그 제품의 값어치를 알고, 경매한다는것 또한 놀랍다.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내부가 있는듯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골동품카메라가 있긴 있지...
58년도에 제조된 칼짜이즈 렌즈의 카메라.
나도 잘 간직했다가 옥션에 내볼까? ㅋㅋㅋ

언젠가 내 카메라를 보여줄 날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2007년 9월 22일 토요일

한가위, 중추절..추석

민속명절인 추석입니다.
전 몇년간 추석에 한국의 가족들과 함께 해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국경절을 이용해 한국에 다녀왔으니까요. 이번에도 그럴 예정입니다.
짧은시간에 다녀와야 하고, 할 일도 산더미같이 많으니까 한국에서의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데 과일푸대님은 많이 설레이나 봅니다.
소녀처럼 갈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회원님들 추석 한가위 풍성하시길 바랍니다.
추석에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해도, 언제나 그자리를 지키시는 분들이니까 걱정마세요.가족들과 함께 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남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시다 오시길 바랍니다.
오실때 두손 무겁게 오시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번 명절때까지 간직할 수 있는 사랑과 여유를 담아오시길 바랍니다.
남으면 좀 나눠주시구요.

모두들 추석 잘 지내세요^^
저야 서울이 고향이라서 고향이라는 아련한 기억이 많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고모, 이모댁에서 어린시절을 지냈던 기억이 나곤 합니다.
고향에 가시면 햇밤 찧어 넣고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밤새 송편도 빚으시며 사랑스럽고 즐거운 대화들 많이 나누세요.

전 이번 추석기간에 상하이에서 있을 상담회에 참석합니다.
과일푸대님과 영찬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추석이 아쉽지만, 목표를 위해 뛰고 있는 남편을 위해 박수치며 격려해주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하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상해에서 뜨는 추석달을 따다가 과일푸대님께 선물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요? ㅋㅋㅋ
추석날 같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이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렵니다.
과일푸대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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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푸대님과 영찬이를 닮은 달 입니다. ㅋㅋㅋ


휘영청 달 밝은 가을밤 어릴 때 추억들도 아이들에게 들려주시고 정겨웠던 고향의 향수들도 마음껏 즐기고 돌아오세요.
영찬이도 제 경험담을 들으며 꿈을 키워나가고, 과일푸대님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꿈을 꾸는 그런 아름다운 가족을 그려봅니다.

풍성하고 행복한 추석명절이 되시고, 오고 가시는 길에 기쁨이 넘치시기를 빕니다.
두들 행복 백만배에 기쁨 넘치시길 바랍니다.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구요.
저처럼 뚱뚱보가 된답니다. ㅎㅎㅎ

푸둥의 진마오따샤에 걸린 달을 보며 양광백화에 걸린 달을 그리워할까요? 후후

청양에서 프라하였습니다.

2007년 9월 17일 월요일

영찬이, 쇼를 하라!

영찬이가 응아를 푸지게 해서 씻기기 전에 벗겨놓고 더운물을 받고 있는 엄마를 뒤로한채 아빠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목! 쇼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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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어디서 많이 본 엉덩이... ㅋㅋㅋ
영찬이는 바닥과 대화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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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건 아니잖아욧! 제게도 저작권이 있는데... 버럭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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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처리해주신다구요? 믿고 따르렵니다.
제 자세 어때요?
섹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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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자이크 처리가 안되면 제가 이렇게... 눈을 감으면 어떨까요?
난줄 모를거예요. 그쵸?
역쉬! 난 똑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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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을 먹기위해 우유도 적게 먹는 꼼수를 부리는 영찬이..
각 종 야채와 과일이 들어간 정성 백만배의 이유식을 먹기전 사알짝 맛을 본다.
나원~ 자기 입맛에 안맞으면 안먹는 이제 6개월 27일째인 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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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서 지어내는 표정이 아니라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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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팔까지 연신 흔들어대면서 기쁨을 표현하려 한다.
이러면 귀여운줄 아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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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돌변한 표정. 뭔일있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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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가 먹는데 보태준거 있수? 뭐?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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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진지하게 먹고 있다. 먹는게 서툴더 나중에 먹을 이유식을 입주변에 잔뜩 묻혀놓긴 하지만, 낼름낼름 잘 받아 먹는다.







2007년 9월 15일 토요일

중국에서 '친구'의 의미.

중국에서는 서로 친구가 되기가 쉽다.
그리고 위아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라는 명제 아래에 썼던 글입니다.
그냥 제가 쓴 글에 대해서는 이렇게 모아두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친구가 쉽게 될 수 있는 민족성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와 같은 생명의 위험에서부터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공산당의 시퍼런 칼날의 억압에서 살아남아야만 했고, 타지역민과의 갈등에서 많은 상해를 입고, 물질적인 강탈을 당했죠.
복수라는 목적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린 그 세월을 이긴후에야 겨우 지금의 민주주의라는 꼬리끝을 잡고 살아내고 있는 중국인민들입니다.

먹을것이 없어서 어머니를 살해에 인육으로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는 비사가 정말로 믿어지기도 하고, 지금도 길거리에서 사형을 실시한다는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들리는것도 다 지나간 역사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천안문앞에서 수 많은 민족지도자와 학생들이 죽어나갈때에도 이네들의 생명경시풍도는 이미 알았어야만 했습니다.
그 가운데 서로 죽이지 않겠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친구라는 단어가 필요했습니다.
난 너에게 해꼬지 하지 않을테니 너도 나에게 그러지 말아라. 서둘러 서로에게 보험처리를 하는거죠.

폭력앞에서는 장사없습니다.
모두 평등합니다.
그렇기에 장관과 구두닦이가 서로 친구가 됩니다.
복수의 칼날앞에서는 누구가 목숨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이와 할아버지는 친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중국에서 친구란 서로 죽이지 않겠다는 신호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살수밖에 없었던 그네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네들이 가장 불쌍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죠.
지금도, 지금 현재도 서로 친구가 되지 않아서 맞이하는 죽음이 가까운곳에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중국인과 친구가 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가 되기는 죽음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를 위해 생명과 재산을 모두 내놓을 수 있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가족보다 더깊은 삼고초려, 도원결의가 친구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친구의 의미는 극과 극입니다.

서로 죽지 않기 위해 친구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친구가 됩니다.

2007년 9월 4일 화요일

중국생활의 일상 첫번째.

하인즈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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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에서 24개월안에 해당되는 아이들을 위한 이유식.  옥수수를 갈아 넣은 이유식인데 영찬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먹으려고 회사로 가지고 나왔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려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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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에 진공안전포장이 되어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가운데 볼록한부분을 눌러서 열으라고 친절하게 씌여있다. 저런식의 오픈방법이 우리나라에 처음들어왔을때 아주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모님이 독일에서 가져오신 약병이 그런식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2006년 12월에 만들어졌는데 2008년까지 괜찮다는데...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아도 병조림제품들은 이정도의 유통기간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통조림도 그정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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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모습.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모두 같을테지만, 중국어로 표기되어 있어서 중국내수용인것으로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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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웬 젓가락?
비자카드로 일정금액 이상 결제하니 이 녀석을 사은품으로 주더란 말씀.
영찬이 예방접종하고 1200위안인가 나와서 카드 결재 했더니 베이징 올림픽 공식후원사인 비자사에서 젓가락을 선물로...
여행사에서 가장 황당한 사건들중 하나가 출발고객에게 미리 해당국의 비자 있냐고 물어봤을때 있다고 대답하고선 비자카드를 공항에서 내놓을때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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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을 벗겨보지는 않았지만, 플라스틱 젓가락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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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마셔주는 네스카페 카푸치노.
원래 크림 들어간 녀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건만 이 식성마저 중국에서 많이 변했다.
이탈리아에서 제일 좋았던건 커피만 시키면 알아서 에스프레소로 가져왔다는 사실.
카페 알롱제 등과 같이 별도로 주문하지 않아도 내 취향의 커피를 맘껏 마실수 있는 나라야 말로 얼마나 좋은거냐 말이지...
암튼, 스트레스 쌓이고, 혈당이 낮아질때 찾는 이녀석.
이제 한 티백 남았다.
또 구매하면 되지만, 더이상 살찌고 싶지 않아서 구입을 미루고 있는중.

그녀석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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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먹는 방법까지 소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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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이 나의 설사병을 낫게 해준 고마운 녀석이다.
약이름도 아이를 위한것이지만, 나에게도 분명 효과가 있었던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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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면에 있는 그림처럼 고약과 같이 되어 있어서 패치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배꼽윗부분에 붙이고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면 감쪽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영아는 6시간, 유아는 12시간정도를 붙여놓는데 난 12시간 이상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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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정보.
마약과 같은 성분으로 만든게 아닌 진정한 실력이라면 정말 강추!
내용물을 모두 사용하는 바람에 사진이 없다.
허브향같은 향이 첨가되어 있긴 하지만, 그닥 좋은 향은 아니었다는 기억이...
몸이 아파서 그런 신경쓸 여력이 없긴 했지만...

2007년 9월 3일 월요일

여름이 간다..

냉방병은 단기간에 날 죽다살아나게 만들더니 곧 이어서 설사병이 일주일을 괴롭힌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봤는데 고열로 인한 장기손상? 이 있지 않았나 싶다.
암튼, 그게 아니더라도 내 장들은 원래 컨디션이 별로가 아니던가.
과민성대장증상인가 뭔가 하고, 헬리콥터 파일로리.. 아무렴 어떠냐.. 고유명사도 내맘이다. 그런것들 덕분에 온전한적이 없지 않더냐 말이다.

결국 어제 영찬이가 설사할때 배에 붙이는 패치를 붙이고 잤는데 아침에 굵고 두꺼운 녀석이 배변감을 느끼게 해준다.
헉~!
영찬이에게 통하는 고약같은 패치가 나에게도 통하다니...
물론, 정로환을 비롯한 약들과 느릅나무를 우린 차와 배를 따뜻하게 하는 각종 민간요법이 다 동원된 끝에 오이비락과 같이 그 약이 효능을 본것같이 되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효과가 없지는 않다. 나중에 그 약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사진도 찍어서 올릴예정이니 기대바랍니다.
왜냐?
이넘의 중국에서 먹는 음식들이 꼭 한두번씩 말썽을 부리기 때문이다. 나처럼 장이 민감한 사람에게는 맛있게 먹고, 뒤끝이 안좋은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 장기적이지 않기때문에 계속 중국음식을 먹게 되는거지만, 도당체 이넘의 중국식당 주방에서는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진미꼬치를 운영하시는 사장님께서는 본인가게의 청결을 자랑하시면서 꼬치집을 운영하는 사장중에 자기자식들에게 본인이 만든 꼬치를 자신있게 먹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거라고.. 아니, 아주 희귀할거라고 말씀하신적이 있는데 그럴것 같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계란볶음밥도 변질된 기름과 씻지않은 채소류의 범벅인것 같아 깨림직하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답게 행동하고, 먹고, 생각해야 하는데 점점 까탈스러워지니 걱정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공중화장실이 더러우면 다음번을 기약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생수가 못미더워 휴대형 정수기통을 하나 구매할까, 집에서 끓인물만 가지고 다닐까 하며 고민이고, 더러운 냄새만 맡아도 덜컥 내 몸망가질까봐 두렵기까지 하다.

이번에 많이 아팠나보다.
아니... 이게 나이 든다는, 나이가 들면 생긴다는 생에 대한 욕심에서 생기는 두려움일까?

그동안 내 멋대로 살아왔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왔으니 가족과 가정과 아이를 위해 살아내는것도 의무이고, 그동안의 자유에 대한 대체근무일텐데 태만해지려는건지... 이렇게 잔머리 굴리다가 재입대 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되길 바라는것에서 그치지 말고, 변명따윈 집어치우고 말내뱉은데로, 글 쓴대로 행동하길 진심으로 스스로에게 바란다.

연초가 아닌데도 내 자신에게 다짐하는 몇가지.

1. 운동 : 일주일에 세시간 이상. 하루에 30분 이상. 출퇴근시간이 불안정하므로...라는 핑계보다 내가 얼마나 성의를 보이느냐에 달린 문제.
등산이나 재미나는 운동으로 가닥를 잡아보자. 원래 아침형 인간이었는데 아이덕분에 아침이 두려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으므로 퇴근후 무조건 30분. 주일엔 태형과 등산 1시간.
30분은 영찬이와 놀아주는 시간이면 운동효과가 날듯하지만-솔직히 운동량이 태부족인 나에게 큰 운동량이긴 하다.-영찬이와 놀아주는 시간은 운동이라기 보다는 노동에 가까우므로 영찬이와 30분은 운동 15분으로 셈하자.

2. 공부 : 공부랄 것도 없다. 시간날때마다 책을 좀 읽자. 원서면 좋고, 원서 아니더라도 영어와 관련된 서적으로. 요즘은 소설책 읽을 시간도 안난다고 하는데 인터넷과 가정일이라고 변명하기엔 하루에 회사에서 인터넷하는 시간은 8시~6시동안 10시간, 퇴근후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 7~9시까지 두시간, 잘때까지 두시간 이상은 남는 시간이다. 그리고 근무중에도 독립근무인 나로서는 최소 두시간 이상 시간이 난다. 아! 또 게으른자의 변명이었다.
점심먹고 두시간동안 책읽고, 공부...아니 공부라기 보다는 '약간의 머리쓰기'

3. 소식 : 소식? 그래 소식이다. 말그대로
小食, 少食 뭐가 맞는건가?
고열이후로 뇌가 반이 되었다고 느꼈는데 진짜인가보다.
량과 관련된것이므로 후자가 맞는걸까?
네이버에 찾아보니...
대식과 반대말이기때문에 전자의 소식이 맞단다. 多食의 반대말이 아니기때문이란다?
근데......  네이버 너도 도당체 못믿겠다.
암튼, 난 뭐가 맞더라도 이걸가지고 시험볼 일 없을테니(나중에 본다해도 틀릴일은 없겠지..ㅋㅋㅋ) 걱정 없다.
내 뜻은 적게 먹겠다는 뜻이다.

뭔가 다짐을 많이 해야 할것 같았지만, 실천 가능한 세가지만 가지고 한달뒤 나와 만나보면 다음에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답이 나와있으리라 믿는다.
중국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근육만들기, 수영선수되기, 피아노 배우기, 그림배우기 등등의 무한도전종목은 나중에 하자.
뭐든지 도전해보는 그네들의 우직함이 부럽다.
무식함이 존경스럽다.

오래된 미래 홈페이지가 안열려서 전화했더니 홈페이지 업데이트 안하면 혼난댄다. 그래서 부랴부랴 글쓰고 '약간의 머리쓰기' 시간으로 들어가려 한다.
코맹맹이 소리의 오래된 미래에게 북경의 지긋지긋한 매연과 오염은 괜찮은건지 물어보려 했으나 괜찮다고 괜찮다고 서둘러 안심시키려는 그의 목소리에 걱정이 앞선다.
기우이길 바라며...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안녕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2007년 8월 10일 금요일

글에 대한 책임.

가리키다, 가르치다.
나르다, 날으다.
꾀죄죄...
착잡하다....

국문학과를 나온것도 아닌데 단어철자에 신경쓰냐고 한다면 할말없다.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단어를 틀리고 있다는데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이 분이 조선족이신지, 당연한 한국인이신지, 외국에서 오래살고 오셔서 그런건지 헷갈릴때가 많다.
뭐... 이해를 하고 넘어가도 되련만, 이상하게도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인다.

제일 많이 틀리고 있는 '가리키다'와 '가르치다'.

정말... 정작 학생을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제일 많이 틀리신다.

사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방향을 지시하는데 사용하는 가리키는걸, 학생들을 가르치는 뜻으로 주로 사용하신다.

나도 국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기에- 원래는 잘했지만-뭐 학창시절에는 누군들 못했겠냐... 나이 먹어봐라 그게 맘대로 안된다.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최소한 글을 사용하면서 '네이버'나 '위키'에라도 물어보는 자세는 어떨까?
저도 글 한번 쓸때마다 고민을 수십번은 한다.
이게 띄어쓰기가 맞는건지, 철자는 맞게 사용한건지, 따옴표나 쉼표는 적절한지...
예~ 물론, 학창시절엔 그런걱정 없었다.
나이 먹다보니까 그렇게, 헷갈리게 되더라구.
그래도 그래도...
이 정도는 타자에 의한 오탈자라고 생각할 정도의 갯수였으면 좋겠다.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까 그렇지 않아도 게시판글이 점점 줄고 있는 마당에 찬물을 껴얹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껴앉는건 맞는 표현인가?.......... 끼얹다가 맞네.. 방금 네이버사전을 찾아보고 다시 왔다.
많은 사람들이 끼얻다로 사용하고들 있으시군요.

이런식으로 글을 쓰려면 너무 힘들고, 신경쓰이지 않냐. 너무한다. 라고
하실지 모르겠다.그러나 결국 내 자신의 문제이고, 내가 신경쓰다가 못참으면 글쓴이에게 직접 따지던지, 내속에서 혼자서 삭히든지 해야 하는거죠.

다른 단어들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거나 아는척 하지 않겠다. 그게 낫겠다.

2007년 8월 4일 토요일

이송희일 감독, 글 참 시원하고 맛나다.

우연하게 알게된 이송희일 감독의 글 몇개.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글을 쓰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첫번째 글을 '첫섹스' 라는 글이다.


1.
자주 인용하는 말이지만, '첫 섹스는 그 이후 모든 섹스의 기억이 된다'라는 말, 이따금 되새길수록 참으로 신통방통하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 어디선가 책에서 건져올렸을 텐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요게 내가 지어낸 말인지 원본 그대로의 텍스트인지 알 길이 없다.

여하간에 신통방통하게, 내가 스무 살에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던 어느 이상하고도 낯선 소설 속 이미지와 가장 강렬하게 근접한 이 자구는 (맙소사 이 순간에 그 책 표지만 생각날 뿐 저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춘기 소년소녀의 열망과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거리는 노쇠한 늙은이 기억의 끄트머리 미망의 원천일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래, 그건 느낌이고 확신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첫 섹스를 하겠지만, 결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는 바로 그 강 속으로 코끼리처럼 걸어들어간 헤라클레이토스의 탄식과 달리 그 떨림의 기억은 다시 반복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공명의 리듬으로 출몰하기 마련이다. 떨리는 손길, 우주 속으로 미끄러지는 현기증, 마른 흙과 풀잎의 내음, 땀과 체액의 교환, 탄식과 실망, 그리고 그 순간 부쩍 성장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지경의 영도에 한 발 딛게 되는 자아.

섹스를 감춰야 되는 것, 하지만 누구나 모든 순간에 사면 벽의 광고처럼 쉽게 접하고 있는 이 역설의 사회에서 '첫 섹스'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음란한 사회에서 첫 섹스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섹스를 부끄러운 것, 자기 몸에서 너무 소중한 것,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입에 달고 다니는 이 모순과 역설, 그 음란하고도 가부장적 체계에서 첫 섹스는 소년의 떨림으로, 소녀의 자각을 이끄는 통과 제의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도시의 '쿨함'은 근대가 고안해낸 가장 치명적인 마음의 병이다.

그런데 왜 나는 한 번도 이런 순간을 영화에 담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 까트린느 브레야 영화에 치를 떨고, 치명적인 도회 인간들의 외로움을 여관 방에 떨어진 휴지와 등치시켜 낄낄대는 영화들과 그런 영화들을 실컷 빨아주는 자칭 모던한 영화 평론가들에 학을 떼면서도. 하긴 아직 내 마음이 그토록, 넓어지지 못한 까닭이지 싶다. 아마 소심하게 바싹 늙어버린 까닭이지 싶다.

이번에 잘 해낼 수 있을까?




2.



르네 오브리. 아마 한국 영화 '인터뷰'에 그의 곡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면 난 정작 르네 오브리에게 편지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싸게 좀 씁시다.' 정서를 밀어붙이기 위해 뭔가를 쓸 때마다 꼭 한 번씩은 찾아 듣게 되는 그이지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새침한 변별에의 의지.


그리고 지금 인터넷검색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300억짜리 루즈 발랐다고 예뻐지냐?'라는 글이다.
가만.. 이 제목은 기사제목인가? 헷갈리네.

제목이 중요한게 아니라 정말 글을 시원하게 잘 쓴다는 사실이다.



막가파식으로 심형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

1.
막 개봉한 <디 워>를 둘러싼 요란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최종적으로 느낀 것은 막가파식으로 심형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 <디 워>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는 점이다. ‘헐리우드적 CG의 발전’, ‘미국 대규모 개봉’ 등 영화 개봉 전부터 <디 워>를 옹호하는 근거의 핵심축으로 등장한 이런 담론들과 박정희 시대에 수출 역군에 관한 자화자찬식 뉴스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는 여전히 70년대식 막가파 산업화 시대이고, 우리의 일부 착한 시민들은 종종 미국이란 나라를 발전 모델로 삼은 식민지식 반쪽 나라의 훌륭한 경제적 동물처럼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엉망인데 현란한 CG면 족하다고 우리의 게임 시대 아이들은 영화와 게임을 혼동하며 애국심을 불태운다. 더 이상 ‘영화’는 없다. 이 영화가 참 거시기하다는 평론가들 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악다구니를 쓰는 애국애족의 벌거숭이 꼬마들을 지켜보는 건 정말 한 여름의 공포다.

▲ 자신의 블로그에 영화 <디 워>를 향한 쓴 소리를 올려 논란이 된 이송희일 감독.
ⓒ 청년필름
2. 그 놈의 열정 좀 그만 이야기 해라. <디 워>의 제작비 700억이면 맘만 먹으면, 난 적어도 350개, 혹은 컬리티를 높여 100개의 영화로 매번 그 열정을 말할 수 있겠다. 제발, 셧업 플리스. 밥도 못 먹으면서 열정 하나만으로 영화 찍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700억은커녕 돈 한 푼 없이 열정의 쓰나미로다 찍는 허다한 독립영화들도 참 많다는 소리다. 신용불량자로 추적 명단에 오르면서 카드빚 내고 집 팔아서 영화 찍는, 아무 미친 열정의 본보기에 관한 예를 늘어놓을 것 같으면 천일야화를 만들겠다. 언제부터 당신들이 그런 열정들을 챙겼다고.... 참나.

심형래씨는 700억 영화짜리 말미에 감동의 다큐와 감동의 아리랑을 삽입하고, TV 프로그램마다 나와서 자신의 열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고지깔 안 보태고 영화판에 몇 만 명은 족히 존재할 게다.

지구가 존재한 이래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아서 영화를 찍어놓고 누가 누구를 천대했다는 건지, 참나.

3.
충무로가 심형래를 무시한다고? 정작 심형래를 ‘바보’로 영구화하고 있는 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충무로라는 영화판은 대중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애증의 욕망의 대상이다. 스타들을 좋아하지만, 반면 끊임없이 스타들을 증오하는 두 가지 배반된 욕망의 투영물인 셈. 이는 스펙타클화되어 있는 정당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갖는 이중의 배리되는 시선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정당 정치에서 배제된 듯 보이는 ‘바보’ 노무현은 잘 살고 거짓말을 일삼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유일한 대항점으로 시민들에게 비춰지면서 대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심형래는 이와 다르지 않다. 충무로에서 지속해서 배척된다고 가정된 바보 심형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심형래의 아우라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저 기존 충무로에 대한 환멸이 투영되어 있으며, 바보는 여전히 바보로서 시민들에게 충무로에 대한 환멸의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보 전략’은 바보 아닌 것들을 비난하며, 서로를 바보, 바보 애정스럽게 부르다가 끝내는 정말 바보가 되어 선거함에 투표 용지를 몰아 넣거나 친절하게 호주머니를 털어 티켓값으로 교환해주는 바보 놀이, 즉 아주 수완 좋은 훌륭한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 쇼박스
4. 심형래와 기타노 다케시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코메디언 출신이면서 B급 영화들을 만들어낸 두 사람의 차이 말이다. 열정의 차이? CG의 기술력의 차이? 애국심의 차이? 헐리우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의 차이? 딱 하나 있다. 영화를 영화적 시간과 공간 내에서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다.

CG가 중요한 것도, 와이어 액션이 중요한 것도, 단검술과 권격술의 합의 내공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조차 정리가 안 되어 있다면, 그 아무리 입술에 때깔 좋고 비싼 300억짜리 루즈를 발랐다고 해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5. 좀 적당히들 했으면 좋겠다.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아니다. 하긴 도처에 난립하고 있는 온갖 징후들로 추측해 보면, 이 하수상한 민족주의 프로파겐다의 계절은 꽤나 유의미한 악몽의 한철로 역사의 페이지에 기록될 게 분명하다. 아, 덥다 더워.


아무래도 난 이송희일 감독의 팬이 되어버린듯 하다.

첫번째 글 출처는 이송희일 감독 블로그인데... 지금 모두 다운되어버려서 어떻게 표기를 해야할런지... gondola21.com

두번째 글은 오마이 뉴스( ohmynews.com )에서..

2007년 8월 1일 수요일

짜증...

아프간에 가서 텔리반에 잡혀있는 사람들 중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그리고 그들의 종교행위에 대해 옹호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어.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키보드로 반대입장을 내고 있다고.
다들 그네들을 욕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성자라도 된다는거야?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의 신념을 믿고 자기 목숨을 사선으로 던진 사람들이잖아?
키보드 뒤에 숨어서 쉽고 편한 삶을 살며 그들을 비난하는 자들을 보면
난 상당히 짜증이 나.

그래서 열받은거라구.

불평은 젊은이들이 하는거라구.
나이 든 사람들과 기성세대는 할말이 없어.
이렇게 만든, 거지같은 세상과 형편없는 도덕률이 판치는 나라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잖아.

아마 이거 배철수형님이 말씀하신거 같은데...

나이 먹을만큼 먹고서 되지도 않는 비아냥과 비난이나 해대고 있다니 꼴사나워.
기성세대들이 이렇게 만든 책임을 지는게 맞는거잖아.
그런데 어따대고 빈정거리는거냐구.

나도 이미 기성세대에 들어섰지...그러니까 제발 우리가 형편없이 만들어 놓은 개같은 세상에 대해 포용하고, 인정하고, 끌어 안고 가야하는거 아니냐구.

나이 어린사람들은 비아냥거리고 빈정거리고 투덜거리면 우리가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나도 잘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저질스러운 사회를 만들어 죄송하다고 고개숙여야 되는거 아니냐구.
비판과 토론을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고 변명한다면 그것까지는 들어줄께.
원래 그걸 못해봤고, 정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지.

2007년 7월 31일 화요일

아! 애통함이여!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새벽부터 들려옵니다.
피랍자 중 한사람이 피살당했다는 소식입니다. 아직 정부에서는 공식적인 의견이 없어서 정확한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봐야 알겠지만, 사실이 아니길 바랄뿐입니다.

우리나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아십니까?
그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하신 그분의 손자는 의사로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봉사와 근면을 실천하시면서 살고 계십니다.
영국계 캐나다인이신 스코필드박사님은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다가 대한민국 독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외국인으로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계십니다.

아마 서양인으로는 유일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적은 선교사와 자기의 종교를 알리기 위한것이었을지라도 그들이 행한 일들은 모두 선량한것이었고, 우리나라를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진정으로 임했던 그들의 순수한 목적만큼은 현재에 와서도 바래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100여년전 그들이 조국을 떠나 머나먼 타지에 도착했을때는 지금처럼 방송이나 우편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이고, 서로에 대해 큰 이질감으로 등돌릴 수 있는 험악한 시기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얼마나 배타적으로 대했을지 지금 우리민족이 정치판에서 보여주고 있는 꼴을 보면 더하면 더했을거라는 생각입니다.
돌 던지고, 침 뱉고, 쌍욕하고, 때리던 민초들에게 고급의술과 식량과 교육과 사랑을 전하신 분들입니다.

조상신을 무시하고, 유일신만 믿으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여자와 평등하라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랍니까?
종과 양반이 동등하다니요? 이게 말이나 되는일입니까?
기술이 인문을 이긴다니요? 세계 최고의 덕목은 유교뿐이었지요.
지금 중국도 학문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유교를 우리는 종교처럼 믿어왔으니 말입니다.
암튼, 그들이 행한 일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벗겨내고, 죽이고, 묻기위해서였습니까?

지금 아프간의 피랍자들을 향한 우리 네티즌을 비롯한 국민들의 태도가 외국언론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는 계십니까?
네티즌끼리 아귀다툼을 한다고 일본언론은 전하고 있으며, CNN과 BBC에서도 한국내 여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워낙 인터넷이 발달했으니 출처는 밝히지 않아도 모두들 잘 찾아서 보시겠죠.

선교가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선량한 봉사가 먼저였고, 사랑의 치유가 우선이었습니다.
개종을 입이나 글로 떠드는 수많은 국내의 기독교인보다는 치료와 구제와 봉사로서 말보다 앞서 글보다 먼저 손수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 떠밀어서 그들에게 수동적으로 나아간게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한길에 대해 그들은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과 산모들, 약없이 쓰러지는 노인들과 병자들을 위해 그 오지에 발을 딛은것입니다.

국내에도 헐벗고 굶주린 이들이 많은데 뭐하러 그렇게 위험한 지역으로 갔냐고 하시는 분들에게는 할말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그 수 많은 입양아들을 왜 수출하는지 아시는 분들이지요.
미국과 캐나다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에 와서 도움을 주고, 식량을 주고, 건물을 지어주고, 의술을 베풀었을까요?

사랑과 선량의 목적으로 신이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인 몸뚱이를 이끌고 그 험한 오지로 나아간 사람들이 어느 지역, 어느 소속, 어느 종교, 종파를 떠나서 그네들의 목적은 사람을 사랑하는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러 간 그곳에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떨고 있습니다.
총부리가 내 머리를 겨누고, 무디고 거대한 정글칼이 내 팔다리를 향합니다.
설사 선교를 하러 갔다고 해도, 그 나라의 사상을 흔들려고 했다 해도, 총부리앞에서 거대한 칼 앞에서 그랬겠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그것도 사람을 사랑하러 간 사람들에게 말입니다.지금도 아프칸의 한 어린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배우고 싶어요.
그 얘기를 듣고 여러분들은 그 나라일이니까 그 나라에서 알아서 잘 하겠지.. 라고 하실겁니까?

아프칸의 한 할머니는 이미 죽은 아들을 보고 싶다며 사진을 품에 간직하십니다.
항생제주사만 있었다면 썩어죽지 않아도 되었을 그 아들을 말입니다.
그래도 위험한 지역에서 봉사는 안된다고 하신다면 여기서 선량한 목적으로 간 그네들을 욕해서도, 비웃어도, 비아냥 거려도 안됩니다.
그럴 자격이 없으십니다.

선교를 이용하는건 탈레반입니다.
선교라는 단어를 끌어낸것도 피랍후 며칠이나 지나서야 탈레반 관련자가 얘기한것입니다.
협상의 도구로 탈레반이 이용하고 있는 단어를 여러분들께서도 사용하시면 안되죠.
우리의 인질들이 탈레반에게 이용당하고 있는것을 즐기시는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종교와 종교를 떠나서 사람을 사랑하는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수는 없습니다.
미친 교회의 억압과 핍박으로 강제적으로 억지로 끌려간 선교지일지라도 그네들에게 비아냥거려서도 힐난의 문책을 해서도 안됩니다.
그들을 종교라는 이름위에 마녀사냥을 해서는 안됩니다.

고 배목사의 원하는대로 동남아-아프칸-아프리카의 봉사활동과 선교활동이 이뤄졌다면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서는 도움도 비난도 하지 않을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케냐의 한 어린이는 공부를 원없이 했을것이고, 나이지리아의 한 할아버지는 우리나라까지 와서 심장수술을 받았을것이며, 탄자니아의 한 산모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을것이니까요.
실명한 그들이 눈을 뜨게 되고, 다리 대신 의족을 달고, 총 대신 연필을 쥘때마다 당신은 감동했었죠.
그리고는 이제와서 그 오지에서 테러리스트에 붙잡혀 정부와 국민을 힘들게 한다고 욕설을 퍼붓습니다.
욕설을 퍼붓기전에종교와 종파를 따지기전에책임과 의무를 따지기전에그네들에게
돌던질 수 있으면 돌 던지시라던 예수의 가르침처럼
사람이 스스로 천당이라고 하신 부처의 가르침처럼
사람을 사랑하라는 모하메드와 코란의 가르침처럼

이글을 쓰는 도중에 피살된 그분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애통함을 금할길이 없습니다.우리라도 제발 서로 욕하고 비웃고 비난을 멈추고, 사람부터 제발 살립시다.

진정하면서 글을 쓰는중이었는데 정말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회사 홈페이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회사 무역부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손대고 현재 90%이상 완료가 된 회사 홈페이지.
회사이름을 밝혀 광고나 홍보용으로 사용하려고도 생각해봤지만, 철저히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사이트이기때문에 생략하기로 했다.
회사 홈페이지 주소가 필요하신 분들은 개인 이메일로 문의하시면 알려드릴수도 있지만, 누가 요걸 필요로 할라나 몰라?

그냥 내가 디자인, 메뉴구성, 포샵에 htm, css, java... 등등까지 손을 대서 만들었다고 하기엔....미안하다.
기존의 빌더에 옷을 입힌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정도도 쉽지는 않다. 가끔씩 아무이유없이 끊기기도 하는데다가 512k~1M정도 나오는 인터넷속도를 이겨내며 이미지 작업과 모듈을 활용하는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암튼, 3주이상 예상했던거지만, 이번주나 다음주초면 완료될것 같다.
그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서야지.
이제 제품사진을 제대로 찍어 올리는일이 남았는데 회사용 똑딱이로 가능할까 몰라.. 망치대용으로 사용하는 필카라도 가져와야 하남...
아니면 먼빗에게 빌려야 할까?

외형보다 제품과 내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내용물을 알차게 채워야 할텐데..라는 걱정이 앞선다.

2007년 7월 26일 목요일

취업. 그리고 나의 시간

오전에 일어나면, 아내를 깨우고, 컴앞에 앉아서 메일 확인을 한뒤 아침식사를 하고 네이버 언어연수원 카페를 관리한 뒤,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서 외부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와 아이와 놀다가 인터넷으로 감초역할을 독톡히 하다가 퇴근하는 아내 픽업해서 집에 들어오면 하루 일과가 대강 끝난다.
대부분 점심에 웬만한 비지니스를 끝내기때문에 저녁에 조금 한가하다. 물론, 야식으로 시원한 맥주로 꼬드기는 피플들이 있긴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게 더 좋아 잘 나가지 않았다.
주말에는 그동안 피로에 절여져있는? 연수원생들과 시내로, 산으로, 바다로 나들이 나가는게 일이었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했지만, 내가 귀찮으면 모든 약속이 조정되거나 연기되거나 취소되버린다.

영찬이가 생기고, 아내가 바빠지고, 내 수입이 일정치 않아지면서 조금 삐걱거리는 우리의 관계를 느낄수 있었다.
게다가 그 수입이라는게 용돈수준일때가 많아서 아내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친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래서 결정한 취업.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대신, 나의 시간을 그네들에게 맡겨야 하고, 그 시간을 사업자와 내 월급을 쥐고 있는 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거나 성실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명제의 무엇.

많은 일자리를 컨택했었다. 쉽게 말하면 보수는 많지만, 여유있고, 꾀를 부릴수 있는 직장을 원했던 기본적인 본능에 맡겼던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우랴.
몇 번의 면접끝에(아내는 잘 모른다.) 결국 지금의 회사로 결정이 났다.
아내 회사의 *이사님의 소개로 수훨하게 결정이 난것이지만, 결국 내가 속해있는 부서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아니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곳이므로 입사하고 지금까지 열흘동안 같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지금도 바짝 긴장되어 있는 상태로 하루를 지내고 있지만, 곧 적지 않은 오더를 받고, 바이어들을 늘릴수 있을거라는 묘한 믿음이 있다.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일까? 아니면 아직도 스스로 잘난척을 하는걸까?

아프간에서 하나님 곁으로 간 그분은 사형당할 당시 믿음으로 충만해서 힘들지 않게 돌아가셨을거라는 생각을 나름대로 해보지만, 남은 가족들의 미래가 걱정이다.
남겨진 그의 어린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영찬이만 남긴 내 빈자리는 끔찍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고 있다.
회사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이메일도 새롭게 만들었다.
바이어주소록도 작성하고 있고, 바이어들과 통화도 하고, 팩스도 보내고 있다.
그 데이터베이스로 시간의 여유는 없지만, 물질적으로는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도전하겠지.

그래서 그동안 시간이 부족해서 업댓도 못하고, 글도 못남기고, 카페관리도 못했다고 변명하기 위한 글이라고 해도 할말없지만, 인간은 적응력의 황제이므로 곧 여유를 가지게 될것이리라.

오늘 낮에 장문의 글을 쓴다는것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냐는 말이다.

2007년 7월 3일 화요일

바다를 정복했던 사람들과 정복할 사람들

라트비아의 리가 해변에서 서쪽으로 가다 보면 베터스비어트라는 작은 어촌이 있다. 이곳의 어부들은 자손 대대로 고기를 잡으며 몇백 년을 살았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바다에 나간 모든 어부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발트해의 거센 바닷바람이 육지를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가을에는 더욱 그렇다.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모두 일손을 놓고 모자를 벗어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부모형제가 물려준 위험하고도 무거운 사명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결코, 바다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아주 먼 옛날, 마을의 선조는 이 바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놓았다.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과 죽을 사람들을 기념하며 ---'.

 언뜻 보면 너무도 슬픈 내용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 글은 매우 용감한 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자기의 일을 꿋꿋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신념이기도 합니다."

발췌 : 지혜(지양용, 비즈니스맵)

윗글을 발췌해 오면서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중국이 바로 라트비아 베터스비어트사람들이 얘기하는 '바다'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민족은 원래 기마민족이었습니다.

중국땅을 호령하며 대초원과 산악을 휘돌며 호령했던 그런 장수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입니다.

그 역사뒤에 숨어서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농경으로 사회를 꾸려나갔던 농경민족도 있었지만, 그네들이 역사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칠레와 미국과 FTA에서도 어느정도 배제되는 모습만 보더라도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지배하는듯 합니다.

그 천하를 호령하던 민족의 우두머리들이 몽고로, 만주로, 심지어 터키와 스페인, 아프리카까지 흩어지고 한반도에는 적은수의 민초들이 남아 대륙열강의 침략속에서 끈질긴 잡초처럼, 겨울에 눈을 뚫고 피어나는 인동초처럼 키워졌습니다.


바로 그 민족이 깨지고, 부서지고, 죽을지언정 대륙으로 대륙으로 쏟아져 나온지 이제 10여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네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정말 많이 변했다고들 말씀하십니다.

저야 이제 얼마 안되어서 감히 그런얘기 못하지만, 중국오시는 새내기들께는 술한잔의 허풍담아 중국이 많이 변했고, 그러면서도 얼마나 변할지 모르며, 처음 들어온 분들보다는 제약이 많아 고생할거라는 약올림에 더해서 살기 좋아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주절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시쳇말로 박터지더라도 들어오실것이고, 여기서 제대로 박터지신 분들 또한 기회를 다시 엿보실것입니다.

무슨 기회라뇨?

중국에 다시 들어와 재기할 기회죠.


현재 중국은 이제 외자기업을 반기지 않습니다.

달러보유국으로는 최고일인자가 된데다가 웬만한 기업의 돈줄따위는 눈에도 차지 않습니다.

유수의 외국기업의 중국기업에 대한 M&A들을 정부에서 그윽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거품이라고 주장하는 주식시장에도 내국인 보호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그동안 3년간이나 주던 세금혜택을 아예 삭제해버리고, 탈세 및 환경오염에 대한 잣대를 외자기업 우선으로 들이대며 괴롭히고 있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중국내 외자기업의 51%가 적자기업으로 신고 되어 있는걸 중국정부에서 뒷짐지고 가만 있지 않겠다며 세금포탈 및 이중장부에 대한 조사를 해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90%이상 적자기업으로 되어 있는 한국기업이 중국정부가 보기엔 눈에 가시죠.

3년간이나 면세혜택 줬는데, 그 이후에도 적자 나서 세금징수가 안되니 외자기업이 '달라벌이'명목외에는 장점이 없는것으로 보이니 이제 그네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달았나봅니다.


게다가 더한것은 이제 노동법이 강화되어 노조간의 계약서를 의무화 하고, 퇴직금을 신설할 예정이랍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말 안듣고 효율낮은 공인들에게 머리숙여야만 하는일이 더 생기고 있는거죠.


그럼, 이제 우린 '바다'로 나가면 안될까요?

이미 바다 한가운데 나왔으니 앞으로 노를 젓던 손으로 헤엄을 치던 울며겨자먹기로 견뎌야만 할까요?


그렇다고 기회와 방법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게시판에 그런글들을 적을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직하게 사업하시고, 투명경영하시고, 노사간의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고, 경영이념을 공부하셔서 현장에 실천하십시요...

라고 얘기한다면 되겠지만, 그렇게 될것 같으면 그게 사업입니까?

석사 논문감도 안되는 애들 리포트지...


다른나라가 중국이라는 바다에 들어오기까지 3년, 들어와서 5년, 파산절차 2년...해서 10년만에 손들고 나갈때 우린 어땠습니까?

물론, 철두철미하게 팬티한장까지 실패한분도 계셨겠지만, 3개월 준비해서 들어와 여기서 중국어 익히고, 중국문화 술로 익히고, 직접 발로 뛰어서 10년이상 사업체를 끌고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기업의 대다수가 말 그대로 헝그리정신의 라면정신이었더랬죠.


그러나 이젠 조금 바뀌어야 합니다.

라트비아의  베터스비어트사람들이 바다로 바다로 나가고 있지만, 기술은 보다 세련되었고, 현대화 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수집할줄도 알고, 데이터에 의한 고기잡이를 익혀가고 있겠죠.

과거의 것만 고집하진 않을것입니다.

중국이, 우리의 바다인 중국이 변한다면 우리도 그와 맞춰 변하면 됩니다.

조금더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말입니다.

중국을 정복한다는 말을 쓰기에는 중국이 두렵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중국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진행되어야 할 '곳간'입니다. 2차, 3차 '캠프'이고, '전진기지'입니다.

그러나 방법은 과거와 달라야 하고, 달라져야만 합니다.

그 해답을 이곳에 올려놓지는 않겠습니다. 아니, 저에게도 해답은 없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좀 더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해답을 찾아 이제 어리버리 들어와 아는척 하는 1.5세대이후 세대의 교육을 맡으셔야 합니다.

말 안듣는다고 답답해 마시고, 멀치감치 바라만 보시며 한숨 쉬지 마시고, 우리네 교육을 위해 여기 계시는 재중한국인들부터 달라져야 할것입니다.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중국을 교육하고, 중국인이 중국인에게 한국을 교육하는 지금, 현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다를 정복중이고, 정복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입니다.

2007년 6월 27일 수요일

혹시 남의 숙제 해보셨나요?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끼리 모여 숙제를 할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숙제도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옥상에 올라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산수 문제도 같이 풀었습니다. 대학 때는 동아리에서, 돌아가며 하는 과제를 했습니다. 영어 잡지를 해석해서 발표하는 것인데, 해석이 잘 안 되는 것은 친구나 선배에게 물어 가며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주 특이하게 느꼈던 것이 있었습니다. 내 숙제를 할 때는 귀찮고 힘들었는데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의 숙제를 도와줄 때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내 숙제를 할 때는 '내 숙제'라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러니 친구 숙제를 도와줄 때는, 부담 없이 문제 해결에만 신경을 써서, 오히려 즐겁게 했던 것이지요.

 훈수를 두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정작 자신은 잘 모르는 수도, 옆에서 보는 구경꾼은 쉽게 짚어 내곤 합니다. 온 정신을 집중하는 당사자가 결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제 삼자가 알아채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당사자는 '내가 두는 장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어느 새 생각의 폭이 한정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부담은, 일을 하는 데 장애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점을 소설가 오 헨리는 자신의 단편소설에서 아주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폴딩이라는 사람에게는 아이드와 밸런스라는 조카가 있었습니다. 큰 부자인 폴딩이 아이드를 상속인으로 결정하자, 아이드는 안절부절 못합니다. 상속을 받기 전에 무슨 큰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그러다 폴딩이 생각을 바꿔 밸런스에게 상속하기로 하자, 이번에는 밸런스가 주체하지 못하고 걱정하더니, 급기야는 쓰러지고 맙니다.

 이 '나'라는 장애를 받지 않으면 일도 술술 잘 풀립니다. 예를 들면, 초보자들이 갑자기 실력 발휘를 할 때 그렇습니다. 초보 낚시꾼이 베테랑들을 제치고 대어를 낚아올리는 것입니다. 도박판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좋은 패가 초보자에게 오기도 합니다. 그들은 아직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뭘 얻어야겠다'하는 마음이 약할 때이기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일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가 한다는 부담을 줄이고 그냥 하면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은 게 세상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중대한 일이라 해도 그저 '남의 숙제'이거니 하는 자세로 임해 보면 어떻까요. 그러면 뭔가 좋은 수가 떠오를 것입니다.


출처 석세스파트너


결혼하고 나서, 정확하게 말하면 결혼전에 정말 웃긴일이(지금은 웃고 넘어갈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었던 일) 우리 부부에게 있었더랬다.
아내가 자꾸 소화불량에 힘도 없다고 해서 한의원으로 양의원으로 진찰을 받다가 사흘만에 임신진단약으로 결과를 알게 된 그일이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친구들의 임신에 대해서는 남편이나 어른들보다 먼저 눈치채고 임신진단을 받게했었던 나의 '신끼'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내 아이의 일에는 우왕좌왕 결론을 내려주지 못하고, 저혈압에 효과가 있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한약을 먹지 않나... 위장장애라는 결과에 양약을 먹이지 않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조금 여유있게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우스개소리로 친구들에게 주식에 관련된 얘기를 하곤 한다.
내가 투자한 곳은 모두 惡手였다. 결론적으로 망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추천한곳에 투자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재미를 봤다. 냉큼 따라가면 또 '머피의 법칙'이...
1200포인트를 충분히 넘어갈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하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1700포인트는 넘어가고 있고, 아는 형에게 투자하라고 했던 코스닥내 한종목은 거뜬하게 찍어주던때에 비해 두배가 넘었다.
코스피에서 찍었던-그냥 내맘속으로만-종목중 하나는 이미 세배가 넘어섰다.

암튼, 남의 숙제는 최고의 모습으로 도와주고 있는 내자신을 보고 있으면, 보스의 기질보다는 조력자의 모습인가.. 라는 생각인데 내 맘 깊은곳에서 꿈틀거리는 보스의 기질은 어떻게 해야 하나..ㅋㅋ 그냥 부회장, 부사장정도면 딱 맞는 그릇일까?
보스의 기질과 조력자의 기질을 동시에 가질수 있으니 말이다.

비가 내린다.
바쁘게 지낸 한주를 대강 정리하고 '부가서비스'를 위해 움직이는 시기가 되었다.
부가서비스에 대해 부연설명하고 싶은 내 성격을 눌러담고 글을 마무리 한다.
왜 그리고 친절한 부연설명으로 글을 늘리는게야! 버럭!

2007년 6월 9일 토요일

이어지는 영찬이 사진들

카메라를 들고 있으려니 손가락과 피사체에 대한 자석이 가만 놔두질 않는다.
그래서 눌러본 영찬이 모습들을 또 올려본다.
조금 식상하거나 지루하더라도 영찬이가 잘 생긴것으로 무마하면 안될까....?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영찬이 사진은 계속 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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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피사체 대부분은 느린셔터 속도로 인해 얼굴이 뭉개지기 마련인데, 셔터속도보다는 렌즈에 맞춰 촬영하니 깨끗하고 보다 선명하게 잡을 수 있어서 좋다.
이런건 빛이 적은 공간에서 사용하기 적절한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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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싸개, 속싸개가 더울것 같아 수건을 배에 말아주곤 하는데.. 사진으로 나와버리니 조금 빈티난다.
잠에서 막 깨어나려는 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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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덜깬 영찬이가 카메라를 의식하며 눈을 내리 깔고 있다.
형님 주무시는데 웬 소란이냐는듯이...

위 사진들중에 확대해서 액자해서 걸어놔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내일 더 많은 사진을 찍겠지만, 아기들의 자연스러운 포즈와 표정을 잡는다는건 생각보다 어렵다.

이제 막 잠이 든 영찬이를 바라보며 오늘 사진정리를 끝낸다.